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내 대규모 원전시설을 장악한 데 이어 공습 과정에서 소규모 연구용 원자로를 폭격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원전과 달리 폭발해도 방사성 물질을 내뿜지 않아 방사능 오염 걱정이 없는데도 지레 겁을 먹고 원자로 파괴 행위를 되레 우크라이나에 뒤집어 씌우려다 발각됐다.
러시아 국방부는 7일 새벽(현지시간) 예정에 없는 발표를 통해 “우크라이나 우익 극단주의단체 ‘아조프 부대’와 우크라이나 보안국(SBU)이 하르키우 물리학·기술연구소의 원자로를 파괴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 원자로를 폭파한 뒤 러시아군의 미사일 공격을 당한 것처럼 위장하려는 것”이라며 “외신기자들이 하르키우에 도착하자 러시아군의 반인도적 범죄 현장을 보여줘 책임을 떠넘기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방부 관계자는 “(이런 음모는) 이 지역을 방사능으로 오염시킬 수도 있는 도발행위”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의 원자로는 소형인데다 원자력 발전소처럼 고농축 우라늄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미량의 저농축 우라늄만 사용한다.
원전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런 형태의 연구용 원자로는 외부 손상에 의해 폭발하거나 파괴되더라도 자연상태에 가까운 우라늄만 배출해 특별히 인체에 해로운 방사능 피해는 거의 야기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주요 국가의 대학이나 연구소들은 도심지역에 위치하더라도 안심하고 소형 연구용 원자로를 설치하고 있다.
러시아군은 이 같은 과학계의 상식조차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자신들의 소행으로 원자로가 일부 파괴되자 엉뚱한 발표를 한 셈이다.
이를 놓고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제2도시이자 동부와 서부를 잇는 전략 요충지인 하르키우를 점령하기 위해 무차별 폭격을 감행했다”면서 “이 과정에서 원자로 설치 건물도 포격해 훼손되자 이를 우크라이나 정부에 책임을 떠넘기려 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SBU는 러시아 국방부의 발표가 나오기 하루 전 이미 이 연구용 원자로 일부가 러시아군 포격에 의해 파괴됐다는 사실을 감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우크라이나 물리학·기술연구소의 원자로는 2000년대 초반 옛 소련 시절 남겨졌던 고농축 우라늄을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넘기는 대신 미국으로부터 기증받아 설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러시아군은 지난달 말부터 하르키우를 집중 공격하면서 원자로가 설치된 건물과 국립대학 등이 위치한 지역에 무차별 폭격을 퍼부어 민간인 사상자까지 나왔다.
신창호 선임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