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포탄에 찢겨 숨진 아이… 부모도 의료진도 오열

입력 2022-03-07 16:19
우크라이나 이르빈에서 일가족이 러시아군 포격에 맞아 숨져 있는 것을 우크라이나군이 살펴보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마리우폴에서 포격에 크게 다친 18개월 아기를 의료진이 응급치료를 하는 모습. 이 아이는 끝내 숨졌다. AP연합뉴스

러시아군의 맹렬한 폭격을 받고 있던 지난 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 젊은 부부가 생후 18개월 된 아들을 품에 안은 채 황급히 한 병원에 뛰어 들어왔다.
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남동부 마리우폴에서 러시아군의 포격에 다친 생후 18개월 남아의 아버지가 황급히 병원에 도착하고 있다. AP뉴시스

아버지는 파란색 담요로 둘러싼 아이를 꼭 끌어안고 다급하게 의사를 불렀다. 뒤 따라 온 어머니의 옷은 피로 얼룩져 있었다. 아버지는 아들이 러시아군이 쏜 포탄에 맞아 크게 다쳤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이에 의료진은 급히 아이의 입을 벌리고 고개를 젖혀 기도를 확보한 뒤 심폐소생술을 시도했다. 아버지는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려는 듯 곁에 서서 아들의 몸을 꼭 끌어안았다.
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남동부 마리우폴의 한 병원에서 의료진이 러시아군의 포격으로 심하게 부상한 18개월 남아를 살리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 AP뉴시스

하지만 아버지와 의료진의 노력에도 아기는 끝내 숨을 거뒀다. 한 의료진은 죄 없는 작은 생명을 살리지 못했다는 허탈감에 빠져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그대로 병원 복도에 주저앉았다.
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남동부 마리우폴의 한 병원에서 의료진이 허탈한 표정으로 주저앉아 있다. AP뉴시스

어머니는 아들의 시신을 끌어안고 오열했다. 아버지도 입을 손으로 틀어막고 눈물을 흘렸다. 아이를 감싸 안았던 담요에는 전쟁의 참상을 대변하듯 핏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남동부 마리우폴의 한 병원에서 한 여성(왼쪽)이 러시아군의 포격으로 숨진 18개월 아들의 시신을 앞에 두고 오열하고 있다. AP뉴시스

AP통신은 6일 “마리우폴은 사방을 포위한 러시아군의 맹폭이 7일째 계속되고 있다”며 이런 사연의 ‘마리우폴의 비극’을 전했다.

이 같은 비극은 우크라이나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이날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 외곽 소도시 이르핀의 도로에 러시아군이 발사한 박격포탄에 피란길에 나섰던 일가족 4명 중 3명이 참변을 당했다.

일가족 4명이 쓰러진 길가엔 이들이 언젠가 행복했던 시절 여행길에 가지고 다녔을 법한 캐리어와 백팩이 나뒹굴었고, 반려견 운반용 케이지 속에서는 영문을 모르는 강아지가 처량하게 짖어대고 있었다. 어머니와 10대인 아들, 8살쯤 돼 보이는 딸은 이미 숨졌고 그나마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아버지는 병사들이 돌보려 애썼지만 의식을 찾지 못했다.

NYT에 따르면 러시아군이 키이우를 향해 남하를 계속하면서 이르핀과 호스토멜, 부차 등 키이우 서북쪽 소도시 주민들도 대거 피란길에 나섰다. 하지만 이 여정도 위험천만하기는 마찬가지라고 이들 매체는 전했다. 파괴된 다리 잔해 사이로 어떻게든 강을 건널 수는 있지만 다리에 접근하기 위해 지나야 하는 도로는 사방이 노출돼 언제 쏟아질지 모르는 러시아군의 포격을 피할 방법이 없다.

사고를 당한 일가족도 다른 피란민들과 무리를 이뤄 도로를 달렸으나 포탄이 이들을 겨냥하기라도 한 듯 날아와 터졌다.

이들 가족의 비극과 우크라이나인들의 목숨을 건 피란길은 언론매체와 SNS를 통해 널리 퍼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분노와 슬픔을 동시에 불러일으키고 있다. 유엔난민기구(UNHCR)는 이날 피란을 간 난민 수가 150만명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이러한 행위가 전쟁범죄에 해당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도 민간인을 향한 러시아의 공격이 ‘야만적’이라고 비난했다.

송태화 임송수 기자 alv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