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릴 러시아정교회 총대주교, 종전 중재자 될까?

입력 2022-03-07 16:02 수정 2022-03-07 16:05
러시아정교회의 키릴(왼쪽) 총대주교와 로마가톨릭의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6년 쿠바 아바나에서 만나 대화하고 있다. 국민일보DB

러시아가 지난달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시작된 전쟁이 종전의 전환점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평화 회담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회담을 중재할 지도자로 키릴 러시아정교회 총대주교에 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세계 교회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측근 중 한 명인 키릴 총대주교가 평화 회담을 제안할 적임자라고 평가하는 분위기다.

이안 사우카 세계교회협의회(WCC) 총무 직무 대행은 지난 2일 키릴 총대주교에게 공개 서한을 발송했다. 루마니아정교회 사제인 사우카 총무 직무 대행은 서한을 발송하게 된 이유로 “수많은 교회 지도자들이 WCC가 키릴 총대주교와 접촉해 전쟁을 멈추고 고통이 끝나도록 주선해 달라고 촉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사우카 총무 직무 대행은 “희망이 없는 시대에 많은 사람이 당신을 평화로운 해결을 위한 희망의 표지를 물어다 줄 사람으로 보고 있다”며 “부디 수난받는 형제·자매를 위해 목소리를 크게 내 달라. 우크라이나 국민 대부분도 정교회의 신실한 구성원들”이라고 호소했다.

스타니스와프 가데츠키 폴란드 주교회의 의장도 같은 날 키릴 총대주교에게 “푸틴 대통령에게 호소해 우크라이나인에 대한 분별없는 전쟁 행위를 그만두도록 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어 “러시아 병사들이 불의한 전쟁에 참여하지 않도록 말해 달라”고도 전했다.

외신에 따르면 지난 1일 러시아정교회 소속 150여 명의 성직자들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즉각적인 중단을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정부와 가까운 행보를 보여온 러시아정교회 성직자 다수가 전쟁에 반대하는 의견을 밝힌 건 이례적인 일로 평가된다.

이들은 “하나님이 우크라이나에 부여한 자유를 존중하고 그들이 서쪽이든 동쪽이든, 어딜 선택하더라도 총구를 겨누는 압력 없이 스스로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면서 “우크라이나에 있는 우리 형제·자매들에게 부당하게 부과된 고통에 통곡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키릴 총대주교가 푸틴 대통령에게 평화를 제안할 가능성이 당장은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남정우 대구 하늘담은교회 목사는 7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동방정교회와는 달리 러시아정교회는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해 국가와 종교를 분리하는 게 쉽질 않다”면서 “공산 정권하의 종교였던 것도 이런 현실이 되는 데 일조했고 국가 종교로서 오랜 세월 누렸던 특권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말했다.

러시아 선교사를 지낸 남 목사는 장로회신학대 대학원에서 러시아정교회 연구로 석·박사 학위를 받은 전문가다. 그는 “요지부동한 러시아정교회지만 세계 교회들이 지속해서 종교의 역할을 감당하도록 촉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