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인 원유 수입 금지 조치가 힘을 받고 있다. 러시아를 더욱 강력히 압박해야 한다는 주장이 국제사회 지지를 받자 대러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유럽에서도 찬성 목소리가 확산하고 있다. 미국은 유럽 동맹과 러시아 원유 수입 금지 논의를 공식화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6일(현지시간) CNN과 인터뷰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은 전날 각료들과 정확히 이 문제(석유 수입 금지)에 대해 전화 통화를 했다”며 “현재 유럽 동맹과 러시아 원유 수입 금지 방안에 대한 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양쪽 시장에 충분한 원유 공급이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 활발하게 논의 중”이라고 덧붙였다.
블링컨 장관은 “우리는 매일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추가하고 있다”며 “우리는 이를 유럽 동맹과 공조 속에 행하고 있고, 만약 견해차가 있다면 이를 해결하는 것도 업무의 일부”라고 설명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이날 뉴욕타임스(NYT) 기고문에서 “내 평생 옳고 그름의 경계가 이토록 뚜렷한 국제 위기는 본 적이 없다”며 “푸틴의 침공 행위는 반드시 실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푸틴 정권에 대한 경제적 압박을 극대화해야 한다. (그러나) 유럽이 푸틴의 자금줄인 러시아산 원유와 가스를 차단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조치는 불충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러시아의 자금줄인 원유와 천연가스 제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플레이션 악화 등의 우려로 석유 수입 제재에 신중한 태도를 보였던 백악관도 입장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대러 제재 강화에 대한 여론이 높아지면서 공화당뿐만 아니라 민주당에서도 이를 지지하는 목소리가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소속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이날 트위터에 “우리는 러시아산 석유의 구매와 의존을 중단하고 에너지원을 다양화해야 한다”는 내용의 영상 성명을 올렸다.
폴리티코는 “석유 수입 제재를 시행하지 않으면 백악관은 푸틴의 생명줄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며 “백악관은 지지기반과 민주당의 요구에 발을 맞추지 않으면 (정치적으로) 불리해진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가격 급등으로 인한 파장이다. 미 자동차협회(AAA)는 이날 기준 전국 휘발유 평균 가격이 갤런당 4.009달러라고 밝혔다. 사상 최고 기록인 2008년 7월 17일 4.114달러에 근접한 셈이다.
미국에서 가장 휘발유가 비싼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갤런당 5.288달러까지 치솟았다. 로스앤젤레스의 한 주유소는 갤런당 6.99달러를 기록했다. 하와이(4.69달러), 네바다(4.52달러), 오리건(4.46달러), 워싱턴(4.40달러) 등 다른 지역도 높은 가격대를 형성 중이다.
CNN은 “18개 주와 워싱턴DC에서 갤런당 평균 가격이 4달러 이상”이라고 전했다.
패트릭 드 한 가스버디 석유 분석 책임자는 “8일까지 4.10달러에 도달할 수 있고, 주말이면 기존 기록을 깰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가스버디는 올해 5월이면 미국에서 휘발유 평균 가격이 4.25달러까지 높아지고, 연말까지 4달러 이상을 계속 유지할 것으로 예측했다.
대러 제재 강황에 대한 지지는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휘발유 가격 상승 등 인플레이션 확대를 지지층이 얼마나 견딜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커지고 있다.
블랙록의 제프리 로젠버그 선임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시장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의 여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는 성장에는 부정적이고 인플레이션 상승에는 긍정적인, 한마디로 부정적인 공급 쇼크”라고 진단했다.
유럽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 가디언은 “러시아는 세계 가스 공급의 17%, 석유 생산의 12%를 차지했다”며 “에너지 전환이 수개월 내에 이뤄져야 한다면 대체 (에너지) 자원으로의 전환은 고통스러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로이터통신은 이날 국제유가가 배럴당 130달러선을 돌파했다고 보도했다. 2008년 7월 이후 최고치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인상된 비용은 미국 소비자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12개월 간 인플레이션 증가치 6.1% 중 휘발유 가격 인상 요인이 4분의 1을 차지했다.
WP는 “유가 상승은 파급 효과를 가져온다”며 “디젤 가격 상승은 이미 문제를 겪고 있는 공급망의 운송 비용을 높인다”고 분석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