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산불이 사흘째 이어진 강원도 동해·강릉시와 경북 울진군은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지난 5일 낮 12시쯤 동해고속도로 옥계IC에 다다르자 잿빛 연기로 가득 차 있는 강원도 동해시의 하늘이 한눈에 들어왔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강릉시 옥계면의 하늘과 극명하게 비교됐다.
옥계IC를 빠져나가자 시가지 도로는 도심을 탈출하려는 차량으로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 동해고속도로 옥계IC~동해IC 구간 전면 통제에 더해 고속국도, 국도, 해안도로 등 대부분 도로의 진입이 통제된 탓이다.
동해 시가지에 다다르자 차 안으로 코끝을 찌르는 매케한 연기가 쏟아져 들어왔다. 숨쉬거나 눈뜨기도 힘들었다. 햇빛은 완전히 가려져 먹구름이 잔뜩 낀 것처럼 온통 어두컴컴했다. 유리창 밖으로 산불 재가 눈송이처럼 계속해서 쏟아졌다.
소방대원들은 도로변 야산에 난 불을 끄느라 분주했다. 주택가에선 소방대원들이 주택에 옮겨붙은 불과의 사투를 벌였다. 휴대전화에는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라’ 등 10여건의 재난문자가 쉴 새 없이 쏟아져 들어왔다.
산불은 동해시 전체를 포위하는 형국이었다. 묵호항 풍경이 내려다보이는 논골담길도 화마가 덮쳤고, 도심 곳곳에서 붉은 불기운과 함께 차들 경적, 소방차 사이렌이 뒤섞여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주민들은 양동이와 바가지를 이용하거나, 호스를 이용해 지붕에 물을 뿌렸다.
헬기가 울진에 집중적으로 배치되면서 강원 지역 산불 진화는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했다. 일부 현장에선 “헬기가 보이지 않는다”는 아우성도 나오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안간힘에도 불길은 막을 수 없었다. 동해 만우마을의 김모(61)씨는 “대피했다가 돌아왔는데 마을 전체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집을 지키고 싶었지만 대처할 방법이 전혀 없었다”고 울먹였다. 지난 5일 새벽 방화로 발생한 강릉 산불은 강한 바람을 타고 4시간 만에 동해시까지 퍼져나갔다.
경북 울진의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사흘째 산불이 계속되면서 자욱한 연기와 떠다니는 재로 숨을 제대로 쉬기 어려웠다. 울진읍과 죽변면에선 산불로 통신시설이 마비되면서 휴대전화가 먹통이 돼 산불 정보가 차단된 주민들이 불안에 떨었다. 또 산불이 전기 선로를 덮치면서 울진읍 연지리 주택 521가구의 전기가 끊기기도 했다.
하늘은 헬기 소리로 요란했다. 소방헬기는 끊임없이 저수지에서 물을 퍼 올려 산에 뿌렸지만 바람이 너무 거세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주택가에는 집 앞까지 내려온 불씨를 잡기 위해 대기 중인 소방차와 비상용 펌프 차량, 통신업체 차량 등이 뒤섞였다.
헬기가 투입된 울진 산불 현장은 북동풍 때문에 진화 여건이 좋지 않은 상황이다. 오전까지는 서풍이 불어 진화가 원활할 것으로 예측됐으나, 오후가 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오후 2시30분 기준 현장에는 초속 3m의 북동풍이 불고 있다. 최병암 산림청장은 오후 5시 브리핑에서 “공중 진화는 매우 어렵다”며 “서쪽 지역에 산불 진압은 안 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자욱한 연기와 송전탑 등도 진화에 영향을 주고 있다. 시계가 좋지 않아 상공에서 불길이 이동하는 모습을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심지어 연기 때문에 방향 감각을 상실해 송전탑이나 송전선과 부딪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동해·울진= 글·사진 서승진 기자 sjse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