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유래 없는 가뭄에 강풍까지 동반한 산불은 울창한 산림을 한순간 잿더미로 만들었다. 매년 봄철, 유독 경북과 강원 등 동해안 지역에 발생한 산불은 대형으로 이어진다. 일단 발생하면 진화하는데 보통 2~3일이 걸리는 것은 기본이다.
산림 및 소방 당국은 이번 겨울은 평년 대비해 기온은 높고 강수량이 현저히 적어 산림이 국도로 건조해진 탓에 봄철 대형 산불 가능성을 한층 높이고 있다고 말한다.
특히 경북과 강원도 등 동해안 지역에서 발생한 산불이 진화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건조한 대지에 강풍까지 동반한 기후는 대형 산불의 발생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다.
기상청 관계자는 “최근 3개월 동안 전국 평균 강수량은 13.3㎜로 평년 대비 14.6%에 불과한 상태로 50년 만의 가뭄”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울진 산불이 발생한 4일에는 동해안 일대에는 강풍 경보까지 발령돼 초속 20m의 강풍이 불어 닥쳤다.
국립산림과학원 이병두 과장은 “산불에 있어서 제일 좋지 않은 환경이 건조 특보와 강풍 특보가 한 지역에 동시에 내려진 경우다. 이번 울진 산불도 건조 특보와 강풍 특보가 동시에 내려졌다. 즉 사소한 불씨에도 산불이 많이 날 수가 있고 또 빠르게 확산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진화 작업을 하는 데도 지금이 최악의 조건인 셈”이라고 말했다.
헬기를 이용한 공중 진화 작업의 한계도 원인이다.
이 과장은 “진화 작업에 큰 역할을 하는 게 헬기를 통한 공중 진화 작업이다. 하지만, 동시다발로 발생하는 산불 때문에 헬기가 부족하다. 지난 5일만 하더라도 전국에서 10건의 산불이 났다. 여러 건의 산불에 대응하다 보면 한 곳에 집중하지 못하고 대응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동해안 지역이 불에 약한 소나무가 많아 산불에 취약한 구조라는 점도 한 몫 한다.
소나무는 지금과 같은 겨울철이나 봄철에 다른 활엽수와는 달리 나무 윗부분에 잎이 존재하게 된다. 즉 탈 수 있는 연료 물질이 많다는 뜻이다. 또 소나무의 송진 성분이 곧 기름 성분으로 화력을 가속화한다. 이 기름 성분에 불이 붙게 되면 열에너지도 더 많이 나오고 열에너지는 더 오랫동안 지속되는 경향이 있다.
이 과장은 “경북 내륙과 동해안 지역에 소나무가 많은 상황이기 때문에 소나무 숲에 한번 불이 붙으면 헬기 한 대가 투입돼야 할 게 두 대가 투입돼야 할 수 밖에 없는 구조여서 그만큼 진화가 어렵게 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대형 산불 원인이 어처구니없게도 토치 방화와 담뱃불 실화 등 인재(人災)일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산불 범죄 관리 체계의 근본적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강릉경찰서는 산림 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로 A씨(60)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은 지난 5일 오전 “A씨가 토치 등으로 불을 내고 있다”는 주민 신고를 받고 출동해 A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A씨는 “주민들이 수년 동안 나를 무시해서 범행을 저질렀다”며 범행을 시인했다. 9일 째 진화와 재 발화를 반복하는 대구 달성군 가창면 산불도 방화로 추정된다.
선거가 있는 짝수 해에 유독 대형 산불이 잇따라 발생하는 징크스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선과 지방 선거가 실시되는 올 들어 경북에서는 벌써 3건의 대형 산불이 발생해 1만5000여㏊의 산림이 잿더미로 변했다.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던 지난 2020년 4월 24일 안동에서 난 산불은 산림 1만944㏊와 건물 14개 동을 태웠다.
지난 1996년 4월 23일부터 25일까지 사흘 간 발생한 강원 고성 산불은 3762㏊의 산림을 잿더미로 만들고 마을 주택 227채를 집어삼켜 200여명의 주민이 집을 잃었다. 그해 4월에는 제15대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졌다.
2000년 4월 제15대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진 해에 발생한 산불은 고성, 삼척, 경북 울진까지 백두대간 2만3913㏊가 초토화 됐다. 여의도(290㏊)의 79.8배나 되는 산림이 잿더미가 되는 초대형 산불로 기록됐다.
울진=김재산 기자 jskimkb@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