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업무태만이 투표권 행사를 막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졌다. 광주지역 한 자치구와 전남 지자체 직원의 실수로 인해 선거인명부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유권자가 제20대 대통령선거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됐다.
6일 광주지역 자치구에 따르면 A씨는 전날 투표를 하기 위해 대선 사전투표장을 찾았으나 투표용지를 발급받지 못했다. 투표사무원의 안내를 받아 투표용지를 받으려고 했다가 선거인명부에서 이름이 빠진 내역을 확인하고 담당 자치구에 문의한 결과 ‘삭제’됐다는 통보가 돌아왔다.
해당 자치구는 범죄 이력과 사망 여부 등 전산망 주민기록을 토대로 지난달 25일 A씨가 명부에서 빠진 대선 선거인명부를 확정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자치구는 A씨가 사법처분을 받았으나 해당 범죄가 선거권 박탈 대상에 속하지는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고 설명했다. A씨의 선거인명부 삭제는 사법처분 이력을 통보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실제 거주지가 아닌 과거 호적 등록지인 전남 모 지자체에 범죄사실을 통보한 이후 ‘선거권 없는 자’로 잘못 분류됐다는 것이다.
A씨 범죄사실과 사법처분 이력은 신분사항 등록지인 전남지역 지자체로 통보됐는데 당시 담당 공무원이 전산망 입력과정에서 오류를 범한 것으로 드러났다.
주소지 담당인 광주 자치구는 전산망 기록을 토대로 선거인명부를 작성했고 전남 지자체의 입력과정에서 ‘선거권 없음’으로 분류된 A씨가 이 과정에서 누락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광주에서는 이와 똑같은 사례가 사전투표 첫날인 4일 다른 자치구에서도 있었다.
광주시민 B씨가 범죄 이력이 사실과 다른 내용으로 전산망에 입력되면서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했다. 각 자치구는 투표권을 박탈당한 A씨와 B씨의 구제 방안을 선거관리위원회에 문의했으나 선거인명부 확정 이후에는 선거에 참여할 수 없다는 유권해석이 내려졌다.
이와 관련, 모 구청 자치행정과장은 “선서권이 없는 주민의 분류는 등록기준지(호적)에서 한다”며 “검찰, 법원 등 사법기관이 등록기준지로 통보하고 해당 지자체가 입력을 잘못해 선거인명부에서 삭제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20대 아들을 둔 50대 아버지가 사전투표에 앞서 거주 중인 동사무소에 선거인명부 등재사실을 문의해 ‘없다’는 답변을 했고 전남 지자체에 문의한 결과 ‘착오’가 발생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선관위 등은 선거인명부 확정을 앞둔 지난달 14∼16일 열람과 이의신청 절차를 진행했다며 A씨와 B씨가 문제 제기 없이 선거인명부가 확정된 상태로 이번 대선에는 법 절차에 따라 투표에 참여할 수 없다고 밝혔다.
A씨 등은 선거인명부 열람 절차 자체를 몰랐다는 입장이다. 앞선 소송 사례를 살펴보면 공무원 또는 선거 관계자의 실수로 유권자가 투표권을 박탈당한 경우 법원은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을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한 바 있다.
광주 한 자치구 공무원은 신분사항 관리와 선거인명부 작성 업무가 이원화한 구조 탓에 동일한 실수가 지역구분 없이 반복됐을뿐 고의성은 없다고 분석했다.
오는 3월9일 제20대 대통령선거의 광주지역 선거인 수는 총 120만8942명으로 확정됐다. 이는 지난 2017년에 실시한 대통령선거의 116만6515명보다 4만2427명(3.64%), 2020년 실시한 제21대 국회의원선거의 120만7972명보다 896명(0.001%)이 증가한 수치다.
선거인 수는 지난 2월9일 명부를 작성한 후 열람과 이의신청, 누락자 등재신청 등의 절차를 거쳐 2월25일 최종 확정됐다. 광주시 전체 인구 144만1034명의 83.89%를 차지한다. 성별로는 남성이 49%인 59만2718명, 여성이 51%인 61만6224명으로 여성유권자가 2만3506명 더 많다.
확정된 선거인명부 열람은 주소지 구청 홈페이지에서 본인이 확인할 수 있다.
선거사무를 담당하는 공무원들은 “사법처분 내용은 통보 받은 지자체만 알 수 있다”며 “선거사무 지자체로서는 전산망에 입력된 내용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건마다 재확인을 거치기에는 물리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