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아내 결혼 직후 가출→혼인 무효? 대법 “단정안돼”

입력 2022-03-06 09:22 수정 2022-03-06 10:21

한국인과 결혼한 외국인 배우자가 혼인 생활 한 달 만에 가출한 사안과 관련해 대법원이 “혼인 무효를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한국 국적의 A씨(남편)가 베트남 국적 B씨(부인)를 상대로 낸 혼인 무효 확인소송 상고심에서 혼인 무효로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창원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6일 밝혔다.

재판부에 따르면 부인 B씨는 한국에 입국해 남편과 함께 생활하다가 1개월 만에 집을 떠났고, 이에 남편 A씨는 법원에 혼인 무효 소송을 냈다.

1·2심 재판부는 B씨가 A씨와 함께 산 지 한 달 만에 집을 떠난 점 등을 근거로 A씨 주장을 받아들여 혼인 무효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대법원은 B씨의 가출만으로 두 사람 사이 혼인 합의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B씨가 진정한 혼인 의사를 갖고 결혼해 입국했더라도 상호 애정과 신뢰가 충분히 뒷받침되지 않은 상태에서 언어의 장벽이나 문화적 부적응, 결혼을 결심할 당시 기대한 한국 생활과 실제 현실 사이의 괴리감 등으로 단기간에 혼인관계 지속을 포기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재판부에 따르면 B씨는 남편 A씨가 ‘결혼하면 경제적으로나 심적으로 어려움을 주지 않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해주겠다’고 약속해 결혼을 결심했다고 진술했다.

B씨는 남편의 부모, 형과 함께 살면서 집안일을 도맡아야 했는데, 그런 가운데 남편의 생활 간섭과 생활비 부족 문제까지 겹치자 갈등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법원은 앞서 지난해 12월 외국인 상대방이 혼인 후 단기간에 가출했다는 등의 사정만으로 쉽게 혼인 무효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한 바 있다.

민법은 혼인 이전 단계의 흠결로 인해 혼인이 유효하게 성립하지 않은 ‘혼인 무효’와 혼인 후 발생한 사유로 혼인이 해소되는 ‘이혼’을 구분한다.

혼인 무효는 이혼과 가족관계등록부 처리 방식이 다르고 유족급여나 상속 소송에도 영향을 크게 줘 원래는 엄격한 기준에서만 인정되지만, 그간 한국인이 외국인 배우자를 상대로 낸 혼인 무효 소송은 상대적으로 무효 사유를 넓게 인정해왔다는 법조계와 학계의 비판도 존재했다.

이에 당시 대법원은 “혼인의사 개념이 추상적·내면적이라는 사정에 기대어 상대방 배우자가 혼인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했다거나 혼인관계 종료를 의도하는 언행을 하는 등 사정만으로 혼인신고 당시 혼인의사가 없었다고 추단해 혼인 무효 사유에 해당한다고 단정할 것은 아니다”라고 판시했다.

아울러 통상 외국인 배우자는 본국 법령에 따라 혼인 성립 절차를 마친 뒤 한국에 혼인신고를 하고 결혼 동거 목적의 비자를 받아 입국한다는 점, 언어 장벽과 문화·관습 차이로 혼인 생활의 양상이 다를 가능성이 있는 점 등을 살펴 외국인 배우자의 혼인의사를 판단해야 한다는 법리도 내놨다.

이번 사건의 남편 A씨는 혼인 무효 청구가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에 대비해 예비적으로 이혼 소송도 함께 냈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