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장기화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특히 미국에선 대러 대응에 대한 국내외 지지가 확산하자 보다 강경 조치를 반기는 목소리가 확산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서방 동맹의 대러 제재를 ‘선전 포고’로 규정하고, 내부 통제조치를 강화하며 강력 맞대응 의지를 드러냈다.
양측이 물러서지 않는 ‘강 대 강’ 대결 양상을 지속하면서 우크라이나에서의 인명 피해를 줄일 해결책 모색이 요원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미 정치전문매체 더힐은 “인플레이션과 팬데믹 피로로 인한 낮은 지지율에 시달려온 조 바이든 대통령이 첫 국정연설 이후 반등을 목격했다”며 “백악관이 터널 끝에서 빛을 희망하고 있다”고 5일(현지시간) 분석했다.
실제 전날 NPR-PBS 여론조사에서 바이든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은 47%로 전월(39%) 대비 8% 포인트 급등했다.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대처’ 항목에서 52%로 직전 조사보다 18% 포인트 올랐다.
러시아가 민간인 피해를 키우는 무차별 공격 방식을 지속하자 대러 제재에 대한 찬성 여론이 높아진 것이다.
민주당 전략가 앤트주안 시라이트는 “중간선거를 걱정하던 민주당에 산소를 불어 넣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분석했다.
이 때문에 중간선거를 앞두고 지지율 확보 비상이 걸린 정치권에서 더욱 선명성 높은 대러 제재 목소리가 분출하고 있다. 리사 머코스키 공화당 상원의원과 조 맨친 민주당 상원의원은 러시아 원유와 가스 수입 금지 제재를 추진하는 법안을 발의했고, 민주당 소속 낸시 펠로시 하원 의장과 딕 더빈 상원의원이 찬성 입장을 밝혔다.
로이터통신이 최근 진행한 조사에서 우크라이나 비행금지구역 지정 조치와 러시아산 석유 구매 중단 찬성 여론은 각각 74%, 80%에 달했다. 반면 바이든 행정부는 유가상승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악화를 우려해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린지 그레이엄 미 공화당 상원의원은 “푸틴 대통령을 암살하게 된다면 당신은 조국과 세계를 위해 훌륭한 봉사를 하게 될 것”이라며 암살 필요성까지 언급했다. 그는 트위터에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러시아 사람들밖에 없다”라며 “러시아 내부의 ‘반란’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해결책”이라고 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온라인 플랫폼 ‘줌’을 통해 미국 상·하원 의원들과 화상 면담을 했는데, 전체 의원 535명 중 절반이 넘는 300명가량이 참석했다. 민주당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는 “당신과 우크라이나 국민의 용기에 고취됐다”고 격려했고, ‘슬라바 우크라니’(우크라이나에 영광을)라고 외치며 응원한 의원들도 많았다고 한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 시민들도 고통을 느껴야 한다”며 비자와 마스터카드가 제재에 나설 것을 요청했는데, 이후 이들 업체는 ‘러시아에서의 사업 중단’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러시아도 강경책에서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날 국영 TV 방송으로 방영된 러시아 항공사 여승무원들과의 면담에서 “러시아에 대해 현재 시행되고 있는 제재들은 선전포고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또 “어떤 나라든 우크라이나에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면 러시아는 이를 무력 분쟁 개입이자 러시아군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우크라이나에서의 군사적 긴장은 계속 고조되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민간인 탈출을 위한 ‘임시 휴전’에 합의했지만, 무산됐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는 휴전 요청에 즉각 응했으나, 우크라이나가 민간인을 방패 삼아 자신들을 보호하고 있었다”고 주장했고, 러시아 국방부는 “우크라이나 측이 휴전을 연장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아 공격 행위를 재개한다”고 선언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