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비밀투표냐” 확진자 사전투표 논란, 거센 후폭풍

입력 2022-03-06 06:55 수정 2022-03-06 12:39
지난 5일 오후 광주 서구 학생교육문화회관에 마련된 상무1동 사전투표소에서 확진·격리자들이 투표한 투표용지를 방역복을 입은 관계자가 전달받아 투표함에 넣고 있다. 연합뉴스

제20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 둘째 날인 지난 5일 오후 5시부터 진행된 코로나19 확진자와 격리자들의 사전투표를 둘러싼 논란이 거세다. 준비 부족과 복잡한 절차로 인한 지연과 혼선으로 쓰러지는 확진자가 나오는가 하면, 투표지를 대리수거하는 과정에 비밀투표가 보장되지 않았다는 등의 항의도 속출하고 있다.

전투표소에 줄선 확진·격리자. 연합뉴스

서울역 투표소의 경우 투표 개시 초반 1시간 동안 투표를 마친 확진자가 4명에 불과할 정도로 시간이 지연됐다. 확진·격리 유권자들은 투표 안내 문자 메시지나 입원·격리 통지서 등을 제시해 투표사무원에게 자신이 확진자임을 확인받아야 하는데 혼란이 빚어지면서 시간이 길어진 탓이었다.

더욱이 투표용지 인쇄 시 신분증이나 지문 스캔으로 본인 확인을 한 일반 투표자들과 달리 확진자는 접촉을 줄이기 위해 선거인 본인 여부 확인서를 작성해야 해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특히 확진자용 임시 기표소에 별도의 투표함이 없이 참관인이 기표 용지를 대리 전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것을 놓고 항의가 빗발쳤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확진·격리 유권자들을 위한 투표 매뉴얼에 따르면 이들은 투표 현장에서 선거사무보조원에게 신분을 확인받은 뒤 투표용지 1장과 임시기표소 봉투 1장을 배부받는다. 이후 전용 임시 기표소에 들어가 기표한 뒤, 용지를 미리 받은 빈 봉투에 넣어 보조원에게 전달한다. 보조원은 참관인 입회하에 봉투에서 투표지가 공개되지 않도록 꺼내 투표함에 넣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 매뉴얼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았다. 여러 기표소에서 보조원이 참관인 없이 투표용지를 건네고 기표된 표를 들고 다니는 등 주먹구구 진행이 발생한 것이다.

일부 투표소에서는 대리수거 논란으로 일부 투표자가 투표를 거부하고 귀가하고, 논란이 커지면서 일시적으로 투표가 중단되기도 했다.

확진자가 임시 기표소에서 투표용지를 받아 기표한 뒤 빈 봉투에 담아 보조원에게 전달, 보조원이 이를 들고 실내로 들어가 투표함에 넣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다.

서초1동주민센터 투표소에서는 참관인이 감염 우려를 들어 참관을 거부하는 일도 벌어졌다. 이에 한 유권자가 “그럼 투표함을 우리가 보이는 곳에 옮기라”고 항의했고 투표 관리자는 “투표함은 랜선으로 연결돼 옮길 수 없다”고 난처해 했다. 또 다른 유권자는 1층에서 투표한 뒤 직접 3층에 있는 투표함에 용지를 넣기도 했다.

투표소마다 대리 수거에 이용된 도구마저 달랐다. 종이쇼핑백을 이용한 곳부터 골판지 상자를 사용한 곳, 플라스틱 바구니 등 준비 부족으로 인한 혼란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전주 덕진구 농촌진흥청 등 일부 투표소에선 봉투에 유권자 이름을 적어서 표를 담자 곳곳에서 유권자들이 “투표함을 가지고 오면 직접 넣겠다” “밀봉할 수 있게 풀을 달라” 등의 항의를 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에는 확진자 사전투표 상황 고발이 이어지고 있다. #부정선거 해시태그를 단 비판 글도 잇따르고 있다. 한 누리꾼은 투표함이 있는 공간은 CCTV조차 없었다며 “내 표가 어떻게 될지 알고 맡기느냐”고 주장했다.

또 다른 누리꾼은 투표용지 봉투에 자신의 이름이 쓰여 있는 사진을 올리며 “비밀투표가 맞냐”고 항의하기도 했다.

선관위 내부 전산 시스템에도 각지에서 올라온 불미 사태 보고가 줄을 이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상황에 여야도 한목소리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질타하고 나섰다.

이양수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 수석대변인은 5일 논평에서 “대통령 선거를 허술하고 부실하게 준비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안이하고 무능한 행정이 불러온 참사였다”고 주장했다. 그는 “부산 강서구 명지1동 사전투표소에서도 선관위 측이 확진자, 격리자가 기표한 투표용지를 속이 훤히 비치는 비닐 봉투에 담아 한꺼번에 투표함에 넣겠다고 말해 유권자들이 반발했다”고 밝혔다.

이어 “‘선거인은 투표용지를 받은 후 기표소에 들어가 투표용지에 1인의 후보자를 선택하여 투표용지의 해당란에 기표한 후 그 자리에서 기표내용이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아니하게 접어 투표참관인의 앞에서 투표함에 넣어야 한다’는 공직선거법 제157조 제4항을 정면으로 위반한 사례”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선관위 관계자는 “부산 명지1동 투표소에서 사용된 건 비닐봉투가 아닌 플라스틱 바구니였다”면서 “기표지를 그냥 수거함에 담은 것이 아니라 별도의 봉투에 담아서 바구니에 넣은 것이어서 내용이 공개되거나 할 상황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도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오늘 코로나19에 확진되신 분들이 투표하는 과정에 많은 불편을 겪으셨다고 한다. 참정권 보장이 최우선”이라며 “선관위와 당국은 9일 본투표에서는 확진자들의 불편과 혼선이 재발하지 않도록 철저히 조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장이자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서영교 총괄상황실장은 선관위가 “사전투표소가 동별로 1개소뿐인 데다, 높은 사전투표율로 인해 많은 사람이 투표장으로 나오셔서 혼란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며 “본투표에선 같은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답변했다고 전했다.

확진자와 격리자는 본투표일인 오는 9일에는 오후 6시부터 7시30분까지 주소지 관할 투표소에서 투표할 수 있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