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발레단은 미국 투어중 왜 이름 바꿨을까?

입력 2022-03-06 07:00
지난 2월부터 미국 투어를 진행하고 있는 러시안 발레 시어터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바꾼 공식 페이스북. 러시아 발레 시어터는 “우리는 평화를 위해 춤춘다. 우리는 우크라이나를 지지한다”는 메시지를 미국 언론에 발표했다. 러시안 발레 시어터 페이스북

우크라이나 사태 여파로 ‘발레의 왕국’ 러시아의 발레단들이 국제무대에서 잇따라 공연 취소를 당하고 있다. 마린스키 발레단과 볼쇼이 발레단 등 러시아를 대표하는 양대 발레단 외에 투어에 의존하는 민간 발레단도 예외는 아니다.

영국에서는 런던 로열오페라극장이 올여름 예정됐던 러시아 볼쇼이 발레단의 공연을 취소한 것을 시작으로 지난 1월부터 3월까지 영국 투어를 진행하던 러시아 시베리아 국립발레단이 지난달 28일 남은 일정을 모두 취소했다. 러시아 시베리아 국립발레단은 영국 에이전트와 손을 잡고 ‘백조의 호수’ ‘로미오와 줄리엣’ 등 전막발레 5개를 가지고 23개 도시를 돌고 있었지만, 여론 악화와 극장 측의 부담으로 남은 공연을 모두 취소하고 귀국했다.

또 스페인에서도 마드리드의 테아트로 레알이 5월 예정됐던 볼쇼이 발레단의 공연을 취소했고, 카탈루냐의 카스텔 드 페랄라다 페스티벌이 7월 마린스키 발레단의 공연을 취소했다. 그리고 프랑스 파리 국립 오페라극장 역시 러시아 당국과 관련된 예술가 및 예술단체와의 협업을 중단한다는 성명을 지난 1일 발표했다. 극장에 소속된 파리오페라발레가 오랫동안 마린스키 발레단 및 볼쇼이 발레단과 교환·합동 공연 등 자주 협업을 진행했지만, 이제는 기약할 수 없게 됐다.

미국 투어 중인 러시안 발레 시어터는 단원들이 12개국에서 왔으며 수석 발레리나 올가 키프야크가 우크라이나 출신이라는 점을 적극적으로 언론에 피력했다. 러시안 발레 시어터 페이스북

아일랜드에서도 지난달 25일부터 열흘간 예정됐던 로열 모스크바 발레단의 투어가 바로 전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중단된 데 이어 오는 29일부터 일주일간 예정됐던 상트페테부르크 발레 시어터의 투어 역시 취소됐다. 두 발레단의 경우 극장에 소속돼 공공 지원을 받는 국공립 발레단이 아니라 주로 투어 공연으로 운영되는 민간 발레단이지만 악화한 여론을 피하지 못했다. 로열 모스크바 발레단은 공연 취소 직후 “우리 발레단은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우즈베키스탄, 폴란드, 일본, 아일랜드 등 다국적 단원으로 구성돼 있다. 우리는 정치 바깥의 세계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평화를 위해 춘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발표하기도 했다.

반면 또 다른 투어 전문 민간 발레단인 러시안 발레 시어터는 지난 2월 9일부터 두 달간 미국의 50개 도시를 도는 투어를 진행 중이지만 취소되지 않았다. 러시안 발레 시어터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우리는 전쟁에 반대한다. 우리는 평화를 위해 춤춘다. 우리는 우크라이나를 지지한다”는 메시지를 내는 한편 단원들이 12개국에서 왔으며 수석 발레리나 올가 키프야크가 우크라이나 출신이라는 점을 적극적으로 언론에 피력한 덕분이다. 여기에 지난 2일 밀워키 공연을 앞두고 현지에서 러시아 단체라는 이유로 비난이 나오자 그다음 날 투어 기간 중 단체명을 약자인 ‘RBT’로만 쓰기로 결정했다. 러시아 단체라는 것을 드러내지 않기로 한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러시아 발레에 대한 수요가 높기 때문에 러시아에는 로열 모스크바 발레단이나 상트페테르부르크 발레 시어터, 러시안 발레 시어터 같은 투어 전문 민간 발레단이 구 소련 붕괴 이후 다수 등장했다. 이들 민간 발레단은 러시아를 대표하는 바가노바 메소드로 공부한 러시아 및 동구권 발레학교 출신들로 구성된다. 하지만 이들 민간 발레단 역시 우크라이나 사태 여파로 한동안 투어에 나서기 쉽지 않아 보인다.

미국 투어 중인 러시안 발레 시어터는 현지에서 러시아 단체라는 이유로 비난이 나오자 투어 기간 중 단체명을 약자인 ‘RBT’로만 쓰기로 결정했다. 러시안 발레 시어터

발레는 예술계에서 러시아의 위상이 압도적으로 높고 영향력이 큰 장르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에 뿌리를 둔 발레는 프랑스에서 17세기 발레학교가 만들어지면서 점차 예술 장르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19세기 중반 프랑스 등 서유럽에서 발레가 여흥거리로 전락하는 동안 러시아에서 보호하고 지원한 덕분에 예술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백조의 호수’ ‘돈키호테’ ‘라바야데르’ ‘호두까기 인형’ 등 오늘날 전 세계 발레단의 인기 레퍼토리들은 러시아 황실극장에서 안무가 마리우스 프티파가 만든 것이다. 또한 1909~1929년 활동한 ‘발레 뤼스’(프랑스어로 러시아 발레단이란 뜻)는 서유럽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발레의 부흥을 이끌었다. 발레 뤼스 출신 무용수나 안무가가 공산 혁명이 일어난 러시아로 돌아가지 않고 유럽이나 미국에 남아 발레단을 만들거나 발레 교실을 운영한 덕분이다.

구 소련은 냉전 시대인 1956년부터 마린스키 발레단과 볼쇼이 발레단을 문화 사절로 서구에 보내기 시작했다. 당시 수준 높은 러시아 발레의 테크닉과 레퍼토리가 많이 알려졌다. 특히 구 소련에서 망명한 루돌프 누레예프, 나탈리아 마카로바, 미하일 바리시니코프는 러시아의 발레 유산을 서구에 전달함으로써 발레의 발전에 기여했다. 그리고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 스타 댄서들과 발레 교사들이 세계 각국 발레단에서 활동하게 되면서 러시아는 발레 교류의 핵심이 됐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사태는 러시아 발레계를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고립에 빠뜨렸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