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오후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남양리 오봉마을에서 주민 윤옥순(79‧여) 할머니는 하천 건넛산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건너편 야산에는 강한 불길과 함께 하늘을 뒤덮을 정도의 많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산불과 20m 떨어진 아래에는 민가가 자리 잡고 있었다.
윤 할머니는 “저기가 이웃 주민의 집인데 혹시나 불이 옮겨붙지는 않을까 너무 걱정된다”며 “산불이 이웃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윤 할머니는 옥계면에 불이 시작된 이날 새벽 밤잠을 전혀 이루지 못했다. 지난 2019년 이 마을을 휩쓸고 간 화마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윤 할머니는 “3년 전 산불 피해를 보지 않았던 산이 이번에 모두 타버렸다”며 “그때도 지금처럼 바람이 엄청나게 불면서 큰 피해가 났다”고 말했다.
오봉마을에선 3년 전인 2019년 4월 4일 산불이 발생했다. 당시 산불은 초속 12m 강풍을 타고 마을을 둘러싼 산을 모두 태웠고, 동해시까지 번지면서 산림 1260㏊와 관광시설, 주택 등을 태워 610억원 상당의 피해를 냈다.
오봉마을 경로당 앞에선 함광식(58)씨가 산불을 한참 바라봤다. 그는 “오봉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천남리에 사는데 3년 전 산불 때 남양리에서 난 산불이 천남리까지 번졌다”며 “당시 집에서 잠을 자고 있었는데 산불이 집에 옮겨붙으면서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고 말했다.
이어 “불이 나면서 문으로 빠져나갈 수 없어 비좁은 창으로 탈출했고 등과 팔 등에 화상을 입어 한 달 넘게 치료를 받기도 했다”며 “빠져나온 지 5분 만에 집이 풀썩 내려앉았다. 지금도 당시 생긴 트라우마 때문에 불만 보면 놀란다”고 했다.
이번 산불은 5일 오전 1시20분쯤 강릉시 옥계면 남양리 주택에서 난 불이 인근 산으로 옮겨붙으며 시작됐다. 산림·소방당국은 소방차 등 장비 20여대와 100여명의 진화인력을 투입해 초기 진화에 나섰으나 큰 불길을 잡는 데 실패했다. 이후 산불은 순간최대풍속은 초속 19m 강풍을 타고 해안가 방향으로 빠르게 번지면서 오전 5시 30분쯤 동해시 망상지역으로 확산했다.
강릉=서승진 기자 sjse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