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이 무시해”… 홧김에 지른 산불, 어머니도 덮쳤다

입력 2022-03-05 15:07 수정 2022-03-05 21:50
5일 강릉시 옥계면에서 발생한 산불이 확산하면서 동해 시내 하늘이 연기와 화염으로 뒤덮여 있다. 동해시 제공

5일 새벽 강원 강릉시 옥계면에 산불을 낸 혐의로 체포된 60대 남성이 동네 주민들에게 무시당했다는 이유 등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이날 강릉경찰서에 따르면 방화 혐의로 체포된 옥계면 남양리 주민 A씨(60)는 방화를 시인하며 “주민들이 수년 동안 나를 무시해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밝혔다.

그는 이 외에도 여러 이유를 들며 자신이 범행했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오전 1시7분쯤 “A씨가 토치 등으로 불을 내고 있다”는 인근 주민의 신고를 받고 출동해 A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체포 당시 A씨로부터 헬멧과 토치, 도끼 등을 증거물로 압수했다.

A씨 어머니 B씨(86·여)는 이날 산불 대피 중 넘어져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을 거뒀다. B씨는 보행 보조기를 끌고 주민들을 따라 경로당으로 피신하던 중 밭에서 넘어져 119구급대에 의해 후송됐으나 이날 오전 6시쯤 사망했다.

B씨는 요양병원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건강이 좋지 않고 거동도 불편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A씨가 주택 등 2곳에서 토치 등으로 불을 낸 것으로 보고 정확한 경위 등을 조사하는 한편 모자 관계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강원도 산불방지대책본부에 따르면 옥계 산불은 이날 오전 1시23분쯤 옥계면 남양리 백봉령 일대 매봉산에서 시작됐다.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강릉 성산 산불과 합쳐지며 20시간째 남양리 마을을 포위하듯 사방으로 번지며 활활 타고 있다.

동서남북으로 불길이 번진 것은 밤새 강풍이 거셌던 탓도 있지만, A씨가 곳곳에 불을 놓은 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해졌다.

옥계면에서 시작된 불은 동해로 급속하게 번지면서 도심을 시커먼 연기로 뒤덮었다. 동해시에 따르면 현재까지도 시가지 전역에 메케한 연기·냄새·미세물질이 있고, 행정구역 중 산불이 붙지 않은 지역에도 민원이 잇따르고 있다. 현재 강릉∼동해 구간 고속도로, 국도, 해안도로는 물론 철도까지 운행이 중단된 상태다.

5일 새벽 강릉시 옥계면에서 발생한 산불이 동해시까지 확산해 묵호항 인근 주택가의 주택과 건물들이 화염에 휩싸여 있다. 연합뉴스

옥계 산불을 초기에 진화하지 못한 이유로는 최초 성산 산불 현장에 진화 인력이 집중 배치된 점이 꼽힌다. 매봉산 산세가 매우 험해 진입이 어려웠던 점도 초기 진화를 제한한 요인으로 지목된다.

강릉시 관계자는 “지금도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고 건조경보까지 발령된 상황이라 오늘 안으로 불을 끄기 어렵다”며 “산불 발생 지역 주민들은 피해를 입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산림 당국에 따르면 이날 오후 5시까지 산림 피해면적은 강릉 옥계·동해가 450㏊, 삼척 260㏊, 영월 김삿갓면 75㏊, 강릉 성산 20㏊로 집계됐다. 이를 모두 합하면 여의도 면적(290㏊·윤중로 제방 안쪽 면적) 약 3배이자 축구장 면적(0.714㏊)으로 따지면 1127배에 달한다.

현재도 확산하고 있는 산불은 진화율조차 정확한 파악이 어려울 정도로 어려움을 겪고 있어 피해 면적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송태화 기자 alv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