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7일째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수도 키이우(키예프)의 지하철역에서 피란살이를 하는 우크라이나인들이 1만5000명에 이른다는 보도가 나왔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2일(현지시간) “1만5000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러시아군의 침공으로 인한 도시의 암울한 상황에서 탈출하기 위해 키이우의 지하철 역에 거주 중이다. 이들 중 대부분은 여성과 어린이”라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남성은 대부분 총동원령에 응해 군에 징집됐다.
NYT가 전한 키이우 시내 지하철 역사 모습과 현장 사진 등은 그야말로 ‘전쟁통’이다. 역사 내 통로와 승강장에는 매트리스와 텐트가 촘촘히 자리해 있다. 피란민들의 머리맡과 침구 사이 등 곳곳에는 급하게 싼 옷 가방과 음식들이 놓여 발 디딜 틈이 없다.
피란민들은 좁은 매트리스에 3∼4명이 함께 누워 잠을 청하는 상황이다. 발이 이불 밖으로 나와 시리지 않도록 발 끝을 담요로 싸맨 이들도 많았다. 역사 이곳저곳을 다니며 음식과 생필품을 전하는 자원봉사자도 눈에 띄었다.
피란민 중 일부는 고양이와 강아지 등 반려동물과 함께하고 있었다. 스마트폰의 화면을 끊임없이 끌어내리며 침공 관련 뉴스를 확인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 같은 상황의 가장 큰 피해자는 아이들이다. 수의사인 올하 코발추크(45)와 그의 딸 옥사나(18)는 NYT에 “이곳은 아이들에게 정말 안 좋은 환경이다. 내가 수의사긴 하지만 이 공간이 얼마나 (아이들에게) 악영향을 주는지는 알고 있다. 아이들은 스트레스로 밤마다 운다”고 말했다.
엄마와 함께 역사 내에서 6일간 지낸 울리아나(9)는 “그렇게 편하지 않다. 하지만 참고 견딜 수밖에 없다. 바깥에 있는 것보다 여기 있는 게 낫다”고 말했다.
NYT는 “(러시아군이 키이우 시내로 진입하든 장기 포위전에 돌입하든) 어느 쪽에서도 나 키이우의 지하철에서 지내는 사람들은 더 힘들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역사 내에서는 의료 등 필수 서비스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키이우의 한 산부인과 병원은 역사 내 한쪽 구석에서 출산이 임박한 임산부를 돌보고 있다. 병원 측은 벌써 5명의 아기가 이 ‘지하철역 병원’에서 태어났다고 말했다.
안명진 기자 a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