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적인 야권 인사 알렉세이 나발니가 “푸틴은 분명히 미친 차르”라며 러시아인들에게 반전 시위를 벌일 것을 촉구했다. 미 정부도 러시아 시민에게 저항할 것을 촉구하는 선전 전략을 펴며 푸틴 대통령을 압박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에서 반전 시위를 벌이다 체포된 시민은 일주일 만에 7600명을 넘어섰다. 러시아 정부는 내분을 잠재우기 위해 조만간 계엄령을 선포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됐다.
2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가디언, 워싱턴포스트(WP) 등 외신에 따르면 나발니는 전날 트위터에 “우리는 TV에서 핵전쟁을 일으키려는 실제 위협을 보고 있다”며 “하루도 더 기다릴 수 없다. 당신이 어디에 있든 매일 오후 7시, 주말과 휴일은 2시에 광장으로 나가라”고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나발니는 현재 모스크바 외곽 블라디미르주 파크로프 제2 교도소에 갇혀 있다. 그는 대변인을 통해 이 같은 메시지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발니는 성명에서 “모든 러시아인이 전쟁을 지지하는 건 아니다. 적어도 겁에 질려 침묵하는 사람들의 나라가 되지 말자”며 “미친 차르가 촉발한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격적 전쟁을 눈치채지 못한 척하는 겁쟁이들의 나라가 되지 말자”고 말했다. 그러면서 “모든 사람에게 거리로 나와 평화를 위해 싸울 것을 촉구한다”며 “푸틴은 러시아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러시아에서 시민 불복종 운동은 계속 확산하고 있다. 가디언은 이날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반전 시위를 벌이던 77세 활동가 옐레나 오시포바가 경찰에 연행되는 장면을 공개하기도 했다. 인권감시단체 OVD-Info에 따르면 지난달 24일 침공이 시작된 이후 반전 시위로 체포된 시민은 7602명에 달했다.
미 정부도 러시아 여론 전환을 위한 정보전을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폴리티코는 “미 국무부는 메시지 앱 텔레그램 등을 통한 정보 전쟁을 하고 있다. 목표는 러시아 시민에게 정보와 진실을 전달하는 것”이라고 국무부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폴리티코는 “점점 더 많은 러시아 국민이 독재자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반대 의사를 표명하자 미국이 러시아 사회의 분열 심화를 이용하려 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러시아 시민의 적극적 행동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뉴욕타임스(NYT) 칼럼니스트 톰 프리드먼은 기고문에서 러시아에 대한 국제 사회 제재를 “러시아인이 푸틴을 대통령을 두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새로운 세금”이라고 묘사했다.
그러면서 “많은 러시아인이 푸틴이 현재와 미래의 지도자인 이상 그들에게 미래가 없다고 걱정하기 시작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프리드먼은 특히 “가능성은 가장 낮지만, 최상의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시나리오는 러시아 국민이 우크라이나 국민이 보여준 것만큼 용기와 헌신으로 푸틴을 축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도 이날 러시아 시민들을 향해 “우리는 여러분 상당수가 이 전쟁의 일부가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며 “제재는 당신을 위한 게 아니라 정부가 침략을 중단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전 세계 수백만 명이 전쟁을 끝내도록 요구하는 당신의 편에 서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연방의회는 오는 4일 예정에 없던 긴급회의를 열기로 했다. 가디언은 “연방의회는 ‘서방 제재에 맞서는 위기 대응책을 공식 논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며 “그러나 러시아가 계엄령을 선포할 수 있다는 추측이 확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계엄령을 도입해 시민 통제를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앞서 푸틴 대통령은 지난달 24일에도 예정에 없던 연방의회를 소집해 해외에서의 군사력 사용을 승인했다.
러시아 싱크탱크인 카네기 모스크바 센터의 타티아나 스타노바야 연구원은 이날 트위터에 “계엄령을 도입하는 게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라며 “계엄령이 선포되면 당국의 권한이 확장돼 통제를 강화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