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고 즉각 철군을 요구하는 내용의 결의안이 유엔총회에서 141개국의 압도적 찬성으로 채택됐다. 반대표는 북한, 벨라루스 등 5개국에 불과했다. 특히 러시아와 가까운 중국, 인도, 이란 등은 반대 대신 기권했다.
유엔총회 결의안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안과 달리 법적 구속력은 없다. 그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국제사회에서 명분을 완전히 잃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로 작용할 전망이다. 국제사회에서 ‘러시아 배제’ 움직임도 더욱 탄력을 받을 수 있어 러시아에는 압박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도 외면했다
유엔은 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우크라이나 사태에 관해 긴급특별총회에서 결의안이 찬성 141표, 반대 5표, 기권 35표로 가결됐다고 밝혔다.러시아의 오랜 우방국인 세르비아도 찬성표를 던졌다. 반대표를 던진 국가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적극 지원하는 벨라루스와 이번 사태에서 지지 의사를 밝힌 북한, 에리트리아, 시리아에 불과했다. 러시아도 스스로 반대표를 던졌다.
국제사회는 중국의 기권에 주목했다. 중국이 러시아와의 협력을 강화할 경우 서방의 제재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컸기 때문이다. 중국은 그동안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반대하고 비난을 피해왔다.
전문가들은 민간인 피해를 키운 러시아의 침공 방식, 국제사회의 단합 강화 등이 중국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했다.
루팅 우 베를린자유대 교수는 포린폴리시 기고를 통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공격은 대서양 횡단 동맹에서 전례 없는 단결을 촉발했고, 이는 중국이 보고 싶어 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동맹의 단결이 강화될수록 일대일로를 추구하는 중국의 대외 정책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우 교수는 “중국에 우크라이나는 유럽연합(EU)의 필수 관문이자 중요한 환승 허브”라고 설명했다.
우 교수는 또 “우크라이나에서 입증되지 않은 집단학살 주장을 근거로 모스크바의 침략을 묵인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중국에 이중 잣대로 간주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이 홍콩과 신장 위구르의 인권 침해 문제를 제기할 때 중국은 내정간섭이자 주권 침해라고 반발해 왔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지할 경우 그동안 내세운 주권주의 담론을 약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에 더욱 분명한 입장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사설을 통해 “중국이 러시아를 비난하지 않는다면 유럽의 관점에선 중국이 적으로 보일 위험이 있다”며 “러시아의 민간인 학살 규탄을 분명히 하지 않는다면 서방은 이를 학살 공모로 간주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에 대한 비난 여론이 중국으로 튈 가능성도 제기된다. 중국과 러시아의 교역은 지난해 1470억 달러에 달했지만, 이는 미국과 EU 교역액의 10%에 불과하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냉전 역학 관계가 굳어지고, 중국이 ‘중국-러시아’ 축에 갇히게 되면 수익성이 좋은 무역 관계에서 단절될 위험이 있다”고 분석했다.
“가장 강력한 용어로 개탄”
이번 결의안에는 “러시아의 2월 24일 ‘특별 군사작전’ 선언을 규탄한다. 무력 사용 또는 위협으로 얻어낸 영토는 합법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러시아의 핵무력 태세 강화 결정을 규탄한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
결의안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가장 강력한 용어로 개탄한다”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즉각적이고 완전하며 무조건 군병력을 철수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마지막 날 발언자로 나선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주유엔 미국대사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겨냥한 무자비한 작전 수위를 끌어올릴 준비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방콕, 부다페스트, 시드니, 서울, 케이프타운 등 전 세계에서 러시아의 전쟁에 반대하고 우크라이나에 연대하는 시위와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푸틴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를 분열시키고 유럽, 미국을 분열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을 수 있지만, 누구도 분열시킬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라며 “우리는 유럽과 민주 세계를 하나로 모았다”고 평가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