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위된 키예프, ‘제2의 레닌그라드 되나’ 시민들 불안

입력 2022-03-02 17:40 수정 2022-03-03 10:04
1일(현지시간) 러시아군의 미사일 공격을 받아 파괴된 우크라이나 제2도시 하르키우의 시청사 앞 광장에 뼈대만 앙상한 차량 등 잔해가 나뒹굴고 있다. 러시아군은 침공 엿새째인 이날 우크라이나 동부 도시 하리코프와 수도 키예프, 남부 도시 헤르손 등을 중심으로 무차별 포격과 폭격에 나서면서 민간인 피해도 속출했다. AFP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키이우)가 ‘풍전등화’에 놓이게 될 처지로 내몰렸다. 러시아군이 병력을 모으고 있고, 인근에는 병참 부대가 목격되는 등 키예프를 포위한 채 화력을 집중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나오고 있다. 자칫 제2차 세계대전 최악의 포위전인 ‘레닌그라드 공방전’과 같은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외신 보도도 이어지고 있다.

1일(현지시간) CNBC는 미국 인공위성 회사 ‘맥사 테크놀로지’가 찍은 위성사진을 분석한 결과 약 65㎞에 이르는 러시아 병참 부대가 키예프 인근 27㎞까지 진군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분석 전문가들은 “러시아군 호송대의 움직임은 러시아가 앞으로 며칠 동안 수도 키예프와 다른 주요 도시에 대한 새롭고 더 강력한 군사적 행동을 할 준비를 하고 있음을 시사한다”며 “호송대 규모로 볼 때 러시아가 전면전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러시아군이 개전 초기의 속전속결 전략이 통하지 않자 ‘플랜B’로 전략을 조정 중이라고 말했다. 러시아가 전략을 바꿔 ‘포위전’을 염두에 두고 전면공세를 가할 준비를 한다는 것이다. 포위전에 돌입하면 적의 보급로·퇴로를 끊은 채 포격·공습·지상군 등 방식으로 장기간 물리적·심리적 압박을 가한다.

뉴욕타임스(NYT)도 러시아군 행렬이 키예프를 포위한 채 총공세를 퍼붓기 위한 용도라고 밝혔다. 런던 왕립합동국사연구소(RUSI) 지상전 전문가 잭 월팅은 “러시아가 병참로를 확보한 뒤 키예프 등 주요 도시를 전면 포위해 저항군을 섬멸할 것”이라며 “키예프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키예프 시민들에게 공습을 할 수 있으니 수도를 버리고 달아나라고 경고했다.

이에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이날 키예프에서 2차 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 포위됐던 러시아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나 시리아 내전으로 폐허가 된 도시 알레포와 같은 극단적 상황이 곧 닥칠 것이라는 불안이 퍼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2차 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 900일 가까이 포위됐던 레닌그라드에선 그 기간 100만명 이상이 기아와 질병, 포격으로 사망했다. 시리아 제2도시였던 알레포도 2012년부터 정부군과 반군 등 사이서 벌어진 내전 중 이런 포위 공격으로 폐허가 됐다.

우크라이나 제2도시 하르키우는 이미 러시아군 공격에 폐허가 되기 직전이다. 러시아군은 하르키우 민간인 거주 지역을 포격한데 이어 공수부대까지 도시로 진입해 현지 병원을 공격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로 인해 최소 21명이 사망하고 112명 이상이 부상을 입은 것으로 파악됐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성명을 통해 “러시아 공수부대가 하르키우에 진입해 병원을 공격하고 있다”며 “침략자들과 우크라이나인들 사이에 전투가 계속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러시아군이 하르키우에 핵 미사일 탑재가 가능한 전략 폭격기를 보냈고, 도시에 미사일 16개를 발사했다”고 덧붙였다. 우크라이나 남동부 항구 도시 마리우폴도 러시아군에 포위된 것으로 파악됐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가진 취임 후 첫 국정연설에서 푸틴 대통령을 향해 “심각한 오산을 했다”며 “장기적으로 큰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강력하게 경고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