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 속 러시아군 전사자 수…“공개되면 푸틴 큰 타격”

입력 2022-03-02 15:26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달 27일(현지시간) 모스크바의 흐루니체프 항공우주 연구생산센터의 러시아 연방 우주국(로스코스모스) 건설 현장을 방문해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군의 사망자 규모가 공개되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가 약화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옛 소련의 1989년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1990년대 두 차례 걸쳐 이어진 체첸 전쟁의 아픔이 있는 러시아로선 많은 전사자 수는 극심한 국내 여론 악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 뉴욕타임즈(NYT)는 1일(현지시간) 러시아군 전사자의 수가 늘어나면 푸틴 대통령의 국민 지지도에 손상이 가고, 정치적 타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도했다. 지금처럼 사망자 수가 계속 늘어나면 자국민에게 우크라이나 동부 분쟁지역에서만 제한적인 군사작전을 진행 중이라고 밝힌 푸틴 대통령의 메시지가 모순된다는 이유에서다.

제임스 스타브리디스 전 유럽연합군 최고사령관은 “많은 보도에서 러시아군이 4000명 이상 죽은 것으로 알려진 것을 보면 매우 극적인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게 확실하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렇게 러시아군의 손실이 크다면 푸틴 대통령은 자국민에게 이번 전쟁을 설명하는 게 어려운 일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러시아군의 전사자 수는 공식적으로 집계되지 않았다. 이코르 코나셴코 러시아 국방부 대변인이 지난달 27일 “다치고 사망한 병사가 있다”고 언급한 것이 전부다. 그는 우크라이나군 전사자가 훨씬 많다는 점을 강조했다.

우크라이나는 지금까지 5300명 이상의 러시아군을 사살했다고 밝혔지만, 이 주장도 확인되지는 않았다. 미 정부도 전사자 정보를 공개적으로 거론하지 않고 있다. 다만 NYT 인터뷰에 응한 미 정부의 한 관계자는 지난달 28일까지 러시아군 2000명이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또 미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의회에 대한 비공개 브리핑에서 교전 닷새 동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사자는 양측 모두 1500명씩 발생한 것으로 추측된다고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확한 수치가 아닌 인공위성 사진 분석과 통신감청, SNS에 올라오는 사진과 보도 등을 토대로 추정한 것이다.

NYT는 미군이 20년간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을 벌이면서 발생한 전사자는 2500명 수준이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아직 확실한 전사자 수가 나온 것은 아니지만, 그때와 단순 비교하면 러시아군의 전사자가 매우 많다고 평가했다.

한 군사 전문가는 “러시아가 최전방 인근에 야전 병원을 지었으며 구급차가 벨라루스의 병원으로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관측된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서북부에 위치한 TV 송신타워가 1일(현지시간)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폭발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이날 폭격으로 국영 방송이 마비됐으며 5명이 숨지고, 5명이 부상했다고 밝혔다. SNS영상 캡처

NYT는 불어나는 전사자 수가 러시아인들에게 오랜 전쟁과 그로 인해 발생한 전사자에 대한 아픔을 상기시킬 수 있다고 분석했다. 미 정부 관계자는 “러시아군 어머니들은 아프가니스탄 침공 때 1만5000명이 죽었고 체첸 공격 때는 수천명이 목숨을 잃은 기억을 떠올릴 수 있다”고 NYT에 전했다.

다른 미 정부 관계자는 “러시아군 전사자를 담은 보디백과 관, 전장에 방치된 시신 등의 모습은 푸틴 대통령의 국내 정치에 치명타를 안길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국방부 지도부는 러시아군이 전사자들을 내버려 둔 채 퇴각한 사실이 굉장히 놀랍다고 말한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국방부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담당했던 에블린 파르카스는 “러시아군이 쓰러진 그들의 형제를 전장에 버려둔 채 떠났다는 것은 충격적”이라며 “결국 러시아의 어머니들은 ‘우리 아들은 어디 있나’라고 묻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도 SNS 통해 러시아군의 피해 상황을 전파하며 군의 사기를 꺾는 데 주력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지난달 27일부터 러시아인들이 전사자나 생포된 부상자 정보를 파악할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를 가동하고 있다. 이 사이트에는 다친 러시아군 포로의 모습을 담은 사진과 영상이 24시간 올라오고 있다.

인터넷 사이트 이름은 옛 소련이 전장에서 후송한 전사자 시신의 군 코드인 ‘카고 200’에서 딴 ‘200rf’로 지었다.

송태화 기자 alv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