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축’으로 떠오른 러시아…“인권유린 정부만 러시아 지지”

입력 2022-03-02 05:48 수정 2022-03-02 09:32

러시아가 민간인 피해를 키우는 무차별 공격으로 국제사회에서 새로운 ‘악의 축’으로 굳어지고 있다. 서방동맹은 러시아의 인권유린을 적극 부각하며 국제사회에서의 고립을 위한 공동 행동을 본격화하고 있다.

미국은 특히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중국, 북한, 벨라루스, 이란, 시리아 등의 인권위기 상황도 비난했다. 이들은 대체로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러시아에 우호적인 발언을 했던 국가들이다. 러시아 우호 세력을 ‘불량국가’ 연합으로 한데 묶어 서방동맹에 대한 지지를 확보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장관은 1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인권이사회 고위급 회기에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민간인을 공격해 막대한 인도주의적 고통을 일으켰다”며 러시아의 이사국 자격 박탈을 제안했다.

블링컨 장관은 “우리가 우크라이나 위기에 초점을 두고 있지만, 그곳이 위원회의 관심이 필요한 유일한 지역은 아니다”며 다른 국가들의 상황도 꺼내 들었다.

블링컨 장관은 우크라이나 침공에 적극 협조 중인 벨라루스를 향해서는 “루카셴코 정권이 러시아의 침공을 쉽게 하고, 해외에 있는 자국 비판자들을 침묵시키기 위해 초국가적인 억압을 사용하면서 시민사회와 민주주의 운동을 잔인하게 억누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중국 정부는 신장에서 위구르인과 기타 소수집단에 대해 인권에 반하는 집단학살과 범죄를 지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블링컨 장관은 “미얀마, 쿠바, 북한, 이란, 니카라과, 남수단, 시리아, 베네수엘라, 예멘 등에서의 인권위기 또한 이사회의 지속적인 관심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블링컨 장관이 언급한 국가 상당수는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러시아 편을 들었다.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이날 무슬림 종교 기념일 TV연설에서 “미국 정권은 위기를 먹고 산다. 우크라이나 위기의 근본 원인은 미국과 서방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북한 외무성도 “우크라이나 사태의 근원은 전적으로 다른 나라들에 대한 강권과 전횡을 일삼고 있는 미국과 서방의 패권주의 정책에 있다”고 비난했다

베네수엘라 외교부도 지난달 25일 성명을 내고 “우크라이나 위기 고조에 우려를 표시한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미국의 부추김 속에 민스크 협정을 우롱하고 저버린 것이 안타깝다”고 밝혔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다니엘 오르테가 대통령, 쿠바 외교부 등도 모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지지한다는 발언을 했었다.

대량살상무기를 동원한 무차별 공격으로 민간인 희생이 속출되는 상황을 강조하고, 인권유린을 자행하는 국가들만 러시아 편을 들고 있음을 드러낸 셈이다.

블링컨 장관은 “전 세계가 인권이사회의 도덕적 명료함과 단결을 필요로 하는 이 순간, 일부 정부는 주권을 국경 내에서는 원하는 것은 뭐든 할 권리라고 주장한다”며 “이런 주장을 하는 정부가 조직적으로 인권을 짓밟고 있다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들 정부가) 우크라이나 주권에 대한 러시아의 극악한 공격에도 섬뜩할 정도로 침묵해왔던 것 역시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러시아에 대한 지지는 곧 인권유린에 대한 외면이라는 메시지를 던지며 국제사회의 비난 여론을 끌어내려는 목적이다.

마틴 울프 파이낸셜타임스 칼럼니스트는 “푸틴은 독재와 자유민주주의 사이의 갈등을 재점화했다”며 “중국 지도부는 러시아 지원이 서방 국가와의 우호관계와 양립할 수 없음을 이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데이비드 밀리밴드 국제구조위원회 회장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도덕적 균형이 위태로워졌다”며 “서방은 더는 인도주의적 실수를 용납해선 안 되고, 가치를 실현할 수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유엔(UN) 긴급 특별총회에서도 러시아 처지가 여실히 드러났다. 193 회원국 중 110여 국이 발언권을 신청해 러시아를 규탄했다.

AFP 통신은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부 장관이 발언을 시작하자 각국 외교관들이 회의장에서 나가버렸다”고 보도했다. 유엔 군축회의에서도 같은 장면이 벌어졌다. 라브로프 장관이 연설할 때 참석한 외교관은 예멘, 베네수엘라, 시리아, 튀니지 등 소수에 불과했다.

국제사법재판소(ICJ)는 “집단학살(genocide)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에 따라 오는 7∼8일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 관련 청문회를 개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