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주요 거점 도시의 민간인 지역에 포격을 가하며 전쟁이 새 국면을 맞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러시아 국방부는 그동안 우크라이나 군사시설만 타격했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당초 예상했던 ‘속도전’이 지체되면서 푸틴 대통령이 전략을 수정해 민간인도 ‘무차별 포격’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영상은 일부 포털사이트에서 재생되지 않습니다. 국민일보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6822753&code=61131111&sid1=int)
국민일보가 28일(현지시간) 러시아 현지 주민에게 제보 받은 영상을 보면 사방에서 폭음이 울리기 시작하며 러시아군이 다연장 로켓으로 추정되는 무기로 우크라이나에 무차별 폭격을 개시하고 있다. 영상에 등장하는 러시아 군인은 누군가와 교신을 나누며 현장 상황을 전달하고 있다. 귀를 막은 채 쭈그려 앉은 이와 포격 장면을 촬영 중인 군인의 모습도 포착됐다.
실제로 미국 NBC 방송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침공 닷새째인 이날 우크라이나의 제2 도시인 하리코프 민간인 거주지역을 폭격했다. 그리드 다연장 로켓, 유엔이 금지한 집속탄도 동원했다.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군과 하리코프에서 며칠째 교전을 이어왔다. SNS에는 인구 140만명의 하리코프 전역에 폭발이 있었고 아파트는 흔들리면서 연기가 나고 있다. 아파트 밖에는 시체가 널려 있고 거리에는 불이 나는 모습도 포착됐다.
영국 가디언도 러시아군이 하리코프 시내 중심가에 다연장 로켓 공격을 가했다고 보도했다. 이 과정에서 폭발에 휘말려 다리 한쪽을 잃은 여성도 목격했다고 전했다. 통금이 잠시 해제된 틈을 타 장을 보러 나왔던 이 여성은 곧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가디언 인터뷰에 응한 하리코프 시민은 포격이 진행되는 동안 대피소에 숨어있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지도부는 러시아군이 민간인 학살을 자행했다고 증언했다. 올레크 시네구보프 하리코프 지방행정국장은 이날 텔레그램에 “도시 거리에서 수십 구의 시신을 볼 수 있다”며 “러시아군은 기반 시설 또는 무장 시설이 없는 민간인 지역을 포격했다. 1명이 사망하고 수십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러시아군의 침공을 ‘전쟁 범죄’, ‘집단학살’로 규정하며 맹비난했다.
이호르 테레코프 하리코프 시장도 “어린이 3명을 포함해 최소 9명이 숨지고 37명이 다쳤다”며 “미사일이 주거용 건물을 타격해 비폭력적인 시민을 살상했다. 이건 이번 사태가 그저 전쟁이 아니라 우크라이나인에 대한 학살이란 걸 보여준다”고 말했다.
톤 헤라셴코 우크라이나 내무부 장관 보좌관은 페이스북에 “수십 명이 죽고 수백 명이 다쳤다. 이 끔찍한 장면을 전 세계가 봐야 한다”며 영상을 올렸다.
AP통신도 하리코프 영상에 민간인 거주지역이 포격을 받았고, 아파트는 반복적인 강력한 폭발해 흔들렸으며, 섬광과 연기가 목격됐다고 전했다.
외신들은 전황이 예상대로 전개되지 않자 조급함을 느낀 푸틴 대통령이 하리코프 시내에 보복성 공격을 가한 것으로 분석했다. 영국 이코노미스는 “하리코프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로켓 공격이 이뤄졌다. 이번 전쟁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인은 하나의 민족이기 때문에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인을 죽이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틀렸다”고 보도했다.
마리우폴 역시 도시를 포위한 러시아군의 집중포화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우크라이나 북부 국경에서 가까운 벨라루스 고멜주(州)에서 이날 양측 대표의 협상이 열리며 수도 키예프에 대한 러시아군의 공세는 다소 소강상태로 접어들었으나, 하리코프와 마리우폴은 그렇지 못했다.
영국 더타임스는 마리우폴에서 잠옷 차림의 6살 여자 어린이가 아파트를 직격한 포탄에 중상을 입고 병원에 실려 왔으나 결국 목숨을 잃었고, 키예프에서도 9∼10세로 보이는 여자 어린이가 러시아 측 파괴공작원들이 쏜 총에 살해됐다고 보도했다.
송태화 기자 alv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