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공·열압폭탄, 집속탄까지 등장…궁지 몰린 푸틴의 강압 전술

입력 2022-03-01 05:11 수정 2022-03-01 08:31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침공 방식을 도시 점령을 위한 ‘포위 전략’으로 전환하면서 민간인 피해가 급증하고 있다. 주거지역에 포탄이 떨어지며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푸틴 대통령은 자신이 예상했던 ‘속도전’이 지체되자 일종의 ‘공성전’ 방식으로 전략을 수정했다. 이 과정에서 다수의 민간인이 피해를 볼 수 있는 집속탄, 진공폭탄까지 사용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미 국방부 고위 당국자는 28일(현지시간) 기자들에게 “러시아군이 현재 키예프 도심에서 약 25㎞ 외곽에 있다. 전날보다 5㎞가량 더 가까이 진격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그들이 계속 진격해 며칠 내 키예프를 둘러싼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했다.

미국은 러시아 침공 계획이 우크라이나의 강한 저항에 부딪혀 차질을 빚자 이 같은 전략 수정에 나선 것으로 판단했다. 군 시설을 목표로 타격을 지속하면 항복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 같은 계획이 흔들리자 도시에 대한 직접 공격 방식으로 바꿨다는 것이다.

특히 러시아가 침공 속도를 높이기 위해 대량살상무기를 동원, 민간인 피해가 급증하고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병원과 유치원, 학교 등에 포격을 가해 어린이 등 민간인이 희생되고 있다는 증언이 쏟아지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가장 심각한 포격과 거리 전투가 북동부 하르키프에서 벌어졌다”고 보도했다. 또 이번 공격에서 집속탄을 사용한 포격이 도시 건물을 강타했다고 지적했다. 집속탄은 폭탄 속에 여러 개의 소형 폭탄이 들어 있어 대규모 인명 피해를 낳을 수 있다.


안톤 헤라셴코 우크라이나 내무부 장관 보좌관은 “하르키프에서만 수십 명이 사망했고, 부상자가 수백 명에 달한다”고 말했다. 인권단체 휴먼 라이츠 워치 마크 히즈네이 부국장도 “이번 공격은 집속탄을 사용한 무차별 공격”이라고 규탄했다.

키예프에서 북동쪽으로 약 90마일 떨어진 체르니히브 도심에도 미사일이 떨어져 주거용 건물이 불에 탔다.

옥사나 마르카로바 주미 우크라이나 대사는 이날 “러시아가 제네바 협약에서 금지한 진공폭탄을 사용했다”며 “우크라이나에 대규모 가해를 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마르카로바 대사는 “러시아가 2차 대전의 나치처럼 무고한 민간인을 죽이고 있다. 주거지역 뿐만 아니라 고아원, 유치원, 학교에도 끔찍한 일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진공폭탄은 주변 산소를 흡수, 강력한 초고온 폭발을 일으켜 인체 내부기관에 손상을 준다. 가해 범위가 넓어 민간인 피해 가능성이 높다. 무차별적인 파괴력으로 비윤리적 대량살상무기로 인식된다.

CNN도 러시아가 TOS-1M 부라티노 화염방사차를 우크라이나로 이동하는 모습을 최근 포착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핵무기에 버금가는 열압폭탄을 최대 30발 발사할 수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하르키프의 모습은 1999년 체첸 수도 그로니즈의 시작처럼 보인다”고 지적했다. 당시 총리였던 푸틴 대통령은 2차 체첸 전쟁에서 반군을 소탕하겠다며 그로즈니에 대규모 공습을 지시해 항복을 받아냈는데, 도심에 대한 무차별 공격으로 민간인 수천 명이 사망하는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다.

군사 전문가들은 “이 같은 포격의 사용은 푸틴이 초기의 (군사접근) 실패 이후 검증된 군사 전술로 회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러시아는 그로니즈 공습 때는 물론 2016년 시리아 알레포 공습 때도 열압폭탄을 사용했다.


미 고위 당국자는 “러시아는 민간 목표물을 공격하며 민간에 피해를 주고 있다. 주거지 등의 공격을 명백히 보고 있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또 “러시아군이 키예프를 향한 더딘 진격에 실망해 전술 재평가를 하면서 더 공격적으로 나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파이낸셜타임스도 “푸틴의 원대한 계획이 무너지고 있다. 궁지에 몰린 대통령은 훨씬 더 무자비하고 위험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제형사재판소(ICC)는 우크라이나 내 전쟁 범죄 조사에 착수하기로 했다. 카림 칸 ICC 검사장은 이날 성명을 내고 “우크라이나에서 전쟁 범죄와 반인류 범죄가 자행됐다고 믿을 만한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며 “우크라이나 내 전쟁 범죄와 반인류 범죄에 대한 조사를 시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법원에 수사 개시 허가를 요청하는 절차를 진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