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다 싶은 아베 ‘핵 공유론’… 기시다 “인정 못해”

입력 2022-02-28 17:27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AP뉴시스

일본 정치권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나온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핵 공유론’에 요동치고 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인정할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기시다 총리는 28일 일본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핵 공유에 대해 “비핵 3원칙을 견지하는 (일본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교도통신이 보도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에 대한 제조·보유·반입을 허용하지 않는 일본 정부의 기조다. 1967년 12월 중의원 예산위에 출석한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에 의해 처음 언급됐고, 1971년 11월 중의원 본회의에서 결의가 가결됐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국인 일본은 유엔 회원국 중 유일하게 전시에서 핵공격을 받은 유일의 국가다. 일본에서 핵 무장론은 민감한 주제다. 더욱이 현직인 기시다 총리는 피폭지 중 하나인 히로시마를 선거구로 두고 있다. 기시다 총리는 이날 “방위를 위해 미국의 억지력을 공유하는 틀을 상정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인정되지 않는다고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정치권에 핵 공유론의 불씨를 지핀 건 아베 전 총리. 그는 지난 27일 일본 후지TV에 출연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 일부에 채택된 ‘핵 공유’ 정책을 일본도 논의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지난 세기 소련을 구성했던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카자흐스탄은 핵무기를 포기하는 대신 러시아, 미국, 영국으로부터 주권과 안보를 보장받는 1994년 부다페스트 각서에 서명했다. 아베 전 총리를 이를 언급하며 “당시 전술핵을 일부 남겨뒀으면 어땠을까 하는 논의도 있다. 일본도 여러 선택지를 내다보고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 극우 세력은 북한의 미사일 도발이 발생할 때마다 군비 증강을 넘어 핵 무장론을 제기한다. 이 여론을 등에 업은 일부 정계 인사들도 동조하는 듯한 움직임을 나타낸다. 하지만 핵무기를 놓고서는 집권 자민당 안에서도 반발이 적지 않다. 기시다 총리도 비핵 3원칙을 견지해온 자민당 인사 중 하나다.

일본 TBS방송은 기시다 총리의 이날 답변에 대해 “전직 총리에게 할 말을 한 건 기시다 총리뿐이다. 제대로 전하는 게 좋겠다”는 야당의 반응을 전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