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드라마 ‘고요의 바다’에는 달에 위치한 ‘발해 기지’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한국 대원들이 등장한다. 고요의 바다는 드라마의 제목이자 1969년 미국 아폴로 우주선이 착륙했던 달 표면의 실제 지명이다. 고요의 바다를 향한 한국의 달 탐사 도전은 드라마 속 얘기만은 아니다. 오는 8월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개발한 한국형 무인 달 궤도선(KPLO·이하 탐사선)이 미국 기업 스페이스X 팰컨9 발사체에 실려 발사된다. 한국 최초 인공위성 우리별 1호가 발사된지 30년 만이다. 한국이 처음으로 달 탐사에 도전하는 역사적 순간이다.
항우연은 지난 28일까지 국민들을 대상으로 탐사선 명칭 공모를 진행했고 5만 건 이상이 접수됐다.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 때 응모 건수 1만여건에 비교하면 관심이 더 뜨겁다. 항우연은 총 중량 678㎏의 탐사선에 우주의 극한 환경을 견디기 위한 열진공챔버 시험 등을 진행했다. 탐사선은 5월까지 각종 진동 시험 등을 거친 후 7월 미국 플로리다주 공군기지로 이송돼 발사 준비를 마칠 계획이다.
달 궤도선 발사 성공하면 전 세계 7번째
달 착륙에 성공한 국가는 구 소련, 미국, 중국이고, 궤도선 탐사에 성공한 나라는 일본, 유럽연합, 인도다. 한국이 성공하면 전 세계 7번째다. 중국은 2019년 인류 최초로 달 뒷면 착륙에 성공하는 등 우주 탐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 항공우주국(NASA)도 2025년 달에 유인 우주선을 보내고 2028년 달 유인 기지를 만드는 ‘아르테미스 플랜’을 추진 중이다. 아르테미스 플랜에는 한국 포함 10여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달의 광물 자원, 우주 탐사에 따른 첨단기술 개발은 주요국들이 우주 공간에 도전하는 이유다.
달 탐사선은 한국이 국제 사회에서 우주 개발 파트너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데 의의가 있다. 탐사선에는 NASA의 섀도캠(shadow cam)이 실리는데 달 지형도 작성 등 유인 달 탐사 자료를 확보한다. 1년 동안 전혀 빛이 비치지 않는 달의 ‘영구음영지역’도 탐사한다.
탐사선은 발사 후 태양과 지구의 중력이 평형을 이루는 라그랑주 L1 지점(지구와 150만㎞ 거리)으로 날아간다. 이후 다시 달의 중력에 이끌려 오는 12월 16일 달 고도 100㎞ 궤도에 진입한다. 달을 향해 곧바로 날아가는 것보다 연료 소모량이 절약된다. 달까지 가는 4개월 간 고해상도카메라로 금성, 목성 등 천체를 촬영한다. 궤도선은 달 표면 촬영을 통해 2030년 이후로 계획된 한국형 무인 달 착륙선의 착륙 후보지도 물색한다.
탐사선에는 감마선분광기 등 첨단기기들도 실린다. 감마선분광기는 달 표면 원소 및 자원 지도 작성에 쓰인다. 향후 달 현지에서 기지를 건설할 때 사용될 기초자원 확보에 필요한 자료다. 군용, 재난 탐사에도 사용이 가능해 1000억원 이상 부가가치가 있는 기술로 판단된다.
2030년 우리 기술로 달 착륙선 발사 도전
탐사선이 스페이스X 로켓에 실리는 이유는 아직 한국이 달까지 탐사선을 보낼 만한 발사체를 개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항우연은 지난해 10월에 이어 오는 6월15일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의 2차 발사를 시도한다.
누리호 발사가 성공하면 정부는 누리호를 네 차례 반복 발사해 기술을 민간으로 이전하는 사업을 진행한다. 국내 기업 후보로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등이 꼽힌다. 누리호 기술이 성공적으로 민간에 이전되면 한국에서도 스페이스X처럼 민간이 우주개발을 주도하는 ‘뉴스페이스’ 시대의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
누리호의 성능을 넘어서는 발사체 개발도 과제다. 현재 2030년 한국형 발사체로 달 착륙선을 발사한다는 로드맵을 바탕으로 기초 단계 연구가 진행 중이다. 본격적으로 후속 발사체를 개발하려면 정부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해야 한다.
‘미래 먹거리’로 꼽히는 우주 산업을 고도화하려면 국내에도 NASA 같은 ‘우주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대가 모아지고 있다. 현재 우주 정책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2개과에서 맡고 있는데 우주를 전담하는 별도 조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대선 후보 ‘우주 컨트롤타워’ 공약도 관심 ↑
대선 후보들도 관련 공약을 잇달아 발표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지난 12일 대전을 찾아 “우주항공과 관련된 것들이 온 동네에 분산돼 있다”며 “이것을 우주전략본부 정도로 대통령 직할 단위로 미국의 나사(NASA)처럼 만들겠다는 게 제 구상”이라고 했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지난 22일 “우주전략본부를 대전에 설치하겠다는 게 대선 공약”이라고 말했다.
반면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청 단위인 항공우주청을 경남 지역에 신설하고, 방위사업청을 대전으로 이전하겠다고 공약했다. 항공우주청 설립을 공약한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는 지난 1월 19일 기자간담회에서 “항공우주청은 대전에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주요 후보 간에 우주 컨트롤타워의 형태와 입지를 두고 차이를 나타낸 것이다. 윤 후보가 항공우주청을 경남에 설립하겠다고 하자 대전시가 강하게 반발하는 등 입지를 둘러싸고 지역간 신경전도 커지는 모습이다.
경남은 KAI,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등 주요 항공우주기업을 비롯해 한국산업기술시험원(KTL) 우주부품시험센터 등이 위치해 있다는 장점이 있다. 대전은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카이스트 등 연구개발기관이 있고 기획재정부 등 다른 기관과 협의도 수월하게 할 수 있다는 게 강점이다.
전문가들은 우주 컨트롤타워의 형태 및 향후 우주 정책과 관련해 대선 후보들이 더 구체적인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지적한다. 우주 개발이 민간 중심의 ‘뉴스페이스’ 시대로 진입하는 상황에서 후보들이 한국의 미래 우주개발 계획과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진수 한양대 기계공학부 교수는 “컨트롤타워의 위치보다도 국내 우주 탐사 관련 테크놀로지를 누가 어떻게 통합·관리할 것인지가 가장 중요하다”며 “한국은 미국, 중국과 달리 모든 분야를 다 할 수는 없다. 항공우주 기술 전문가가 현재 한국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허환일 충남대 항공우주학과 교수는 “현재 한국 우주사업은 부처, 개인, 기업체 별로 사공이 너무 많다”며 “일관된 목소리를 위한 협의체가 필요하고 새정부 초기 우주개발 컨트롤타워 설치가 반드시 해결돼야 한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산업계, 학계 전문가들과 각 부처 파견 공무원 50~100명 정도로 우주전략본부를 구성할 수 있다. 대통령 직할 본부로 운영하다 청 단위 조직을 추가로 만들어도 된다”고 말했다. 이어 “집권 후 5년 간 우주 정책에 대해 적어도 차기 정부 인수위에서는 구체적인 밑그림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