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청이는 러시아 경제…최대 은행 계열사 파산 위험, 화폐 가치는 사상 최저

입력 2022-02-28 15:29 수정 2022-02-28 17:11
러시아인들이 27일(현지시간) 모스크바의 알파 은행에서 현금을 인출하기 위해 현금자동인출기(ATM)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AP뉴시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한 서방 국가들의 제재가 본격화하면서 러시아 경제가 빠르게 붕괴하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 등 외신에 따르면 유럽중앙은행(ECB)은 27일(현지시간) 러시아 대형 국영은행 스베르방크의 계열사 ‘스베르방크 유럽’이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내 자회사와 함께 파산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ECB는 성명에서 “스베르방크 유럽과 자회사들은 지정학적 긴장 영향으로 예금 유출이 심했고, 이는 유동성 악화로 이어졌다”며 “각 은행들이 만기일에 맞춰 채무를 상환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가디언은 스베르방크 그룹 차원 및 각 자회사 내부에서 이 상황을 극복하기에는 현실적인 방안이 마땅치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28일 러시아 루블화 가치는 30% 가까이 폭락했다.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역외 시장에서 1달러당 루블화 환율이 장중 117.817루블을 기록하며 전 거래일 종가(83.64루블) 대비 약 28% 하락했다.

이는 서방이 러시아 중앙은행을 제재하고 일부 러시아 은행들을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에서 퇴출하기로 합의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스위프트는 달러화로 국제 금융 거래를 할 때 필요한 결제 시스템을 운영하는 비영리조직으로 200여개국 1만1500여개 금융기관이 속해 있다. 이 결제망에서 퇴출당하면 사실상 금융 거래가 전면 불가능해진다. 가디언은 스위프트 제재로 인해 투자자들이 달러 등 화폐로 환전하려 할 때 러시아 통화를 피할 것으로 예상돼 루블화 가치가 더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설상가상으로 애플페이, 구글페이 등 러시아에서 대중적인 지급결제 시스템도 중단됐다. 일반 상점에서 결제를 위해 플라스틱 신용·체크카드와 현금을 이용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러시아 은행들은 현금 공급과 온라인 거래에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면서도 고객들에게 은행 카드를 갖고 다닐 것을 권고했다.

러시아 곳곳에선 주민들의 달러 사재기가 연출되고 있다. 모스크바의 한 쇼핑몰 현금인출기(ATM) 앞에서 줄을 선 블라디미르(28)는 블룸버그에 “1시간 동안 줄을 섰는데 외화는 없고 루블화만 남아 있다”고 토로했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이날 외국인의 국내 유가증권 매도를 금지하고 거래소 개장을 연기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전했다. 서방의 제재에 러시아 금융시장이 붕괴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면서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또 국내 귀금속 시장에서 금 매입을 재개할 것이라고도 밝혔다. 러시아에서 금을 채취하는 광산업체 폴리메탈과 폴리우스 등이 런던이나 뉴욕 선물거래소에서 금을 판매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자 이에 대비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달러화에 대한 노출을 줄여 루블화 가치의 낙폭을 줄이기 위한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임송수 기자 songst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