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예천청년회와 군민들이 힘 모아 설립한 대창중·고등학교가 올해로 개교 100주년을 맞아 전통의 명문 민족사학으로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3.1운동 이후 1922년 민족교육, 교육구국 정신을 내걸고 개교해 일제의 모진 탄압과 격동의 근대사를 딛고 현재까지 중단 없이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대창중·고는 일제 강점기 예천청년회 등 경북북부지역 독지가와 민간인들의 기부금으로 1922년 2월 15일 예천읍 뒷산인 송대(松臺) 언덕에 ‘대창학원’으로 개교, 보통과와 고등과(高普) 과정으로 열었다.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3.1운동 이후 인재 양성 국권 회복의 민족 교육 운동이 전개될 때 개교 된 학교 중에 오늘까지 남아있는 학교는 경북에서는 유일하다.
100년 전통의 명문 사학은 대구에서 대륜학교 전신인 교남학원이 1921년 9월에 개교했다. 그 후 김천에서는 김천고보가 1931년 설립됐다. 이외에 중등 공립학교로는 대구고보가 1916년, 안동농림학교가 1933년 개교했으며, 미국 기독교 선교사들이 세운 미션스쿨로는 1906년 계성학교 1907년 신명여자중학교가 설립됐다.
대창학원의 개학식은 1922년 2월 15일 예천향교에서 개최됐다. 예천청년회를 대표해 회장 권준흥이 식사(式辭)를 하고 첫 교실은 다산 정약용이 공부하던(다산시문집) 예천향교 명륜당이었다.
대창학원 설립 대표자 권준흥(權準興 1881~1939)은 대한제국 혜민원 주사를 지내고 항일 투쟁을 한 독립운동가이다. 초대 대창학원장 장봉환(1868~1929)은 고종황제 최측근 심상훈 등 유생들과 의병 봉기를 도모하다가 일본에 의해 1906년 해임된 반일(反日)인사다.
장봉환 초대 대창학원장. 을사늑약 이후 대구진위대장으로 좌천돼 의병봉기를 도모하다가 해임된 반일(反日)인사다
대창학원 설립 기금 모금운동도 이채롭다. 3.1운동 직후 조직된 민족 의식을 지닌 예천청년회가 앞장서고, 권준흥 회장과 벽천 김석희 부회장을 비롯한 영주와 상주 등 독지가와 민초들이 낸 기부금 2000여원이 종잣돈이 됐다.
당시 나라를 잃고 가난과 배고픔에 지친 민초들이 배워야 된다는 민족적 자각과 함께 대창학원의 설립은 새로운 희망이었다. 가난과 학령 초과로 일제가 만든 보통학교에 입학하지 않은 대구고보나 경성(서울)으로 유학하지 못했던 예천, 안동, 문경, 의성, 영주 등 경북북부지역 학생 150여 명이 대창학원으로 몰려들었다.
이후 일제 탄압과 방해로 대창학원이 운영난을 겪게 되자 당시 청년회장이던 김석희 외 4인이 1925년 학교운영권을 공동 인수하고 김석희 회장은 학원장으로 취임했다. 1927년에는 조선시대 예천군 객관을 현재 대창중고 자리로 이건해 새로운 교실로 사용했다.
대창학원은 민족주의 교사들의 활약상으로 유명하다. 경기도 출신으로 경성고보 재학 중 3·1만세운동으로 체포되었다가 일제의 감시를 피해 예천 대창학원으로 온 독립유공자 유근영(1897~1949)은 일경의 감시를 피해가며 학생들에게 국학(역사와 문화)을 은밀하게 가르쳤다.
한글학자이자 언어민족주의자로 경성고상(서울대상대 전신)출신인 권영달(1927∼1945) 선생은 권준흥 회장의 아들로 1927년부터 1942년 까지 대창학원 교사로 도서실 바닥에 엎드려 몰래 한글을 가르쳤다.
영주 풍기의 독립운동가 아들로 태어난 송홍근(1914~2003)은 대창학원을 졸업하고 도일 유학 후 귀국하여 모교 대창학원에서 한국의 역사와 말과 글을 가르쳤다.
이들은 모두 일제의 모진 탄압을 무릅쓰고 비밀리에 우리 민족문화를 가르치고 반일 독립의식을 고취하는 등 민족 교육을 계속해 대창학원이 민족 교육의 요람으로 전국적인 주목을 받는데 기여했다. 학원장 김석희 선생은 교사와 학생들을 지원하고 일제의 탄압을 온몸으로 막아서며 이들을 보호했다.
대창학교 동문들은 개교100주년 기념사업회(회장 정용인 전 대전고등법원장)를 결성, ‘민족교육의 요람, 대창중고등학교개교100년사’ 편찬(편찬위원장 김봉균), 역사 자료 수집 전시 등 각종 기념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100년사에는 1924년 대창학원 1회 졸업생 권동하(전 2공화국 경북도의회 부의장), 제8대 조계종 서암(西庵) 종정의 유고와 이수창 삼성생명회장, 세계해외한인무역인협회장을 지낸 권병하 말레이시아 기업인, 이상연 전 재경경북도민회장, 김종창 전 금융감독원장, 한국경제학회장을 지낸 김정식 연세대 상대학장, 트랙스타 권동칠 대표, 장해랑 EBS사장, 하이델베르크대학 철학박사 출신 김윤구 명지대 교수 등 동문의 애틋한 추억이 서린 글이 게재된다.
대창학원(47년 대창공민중학교 개명)은 총 26회 졸업생 2,362명(여자 148명 포함)을 배출하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49년 대창중학교로, 53년 봄 대창고등학교로 다시 출발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올해 2월 대창고등학교 67명이 졸업하는 등 정부수립 이후에만 67회에 모두 1만2,388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이후 농촌의 쇠락으로 학생 수가 급감해 현재 대창고는 12개 반 214명, 대창중은 6개 반 130명이다.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대창고 교사, 안동상공회의소회장을 지낸 조동휘 이사장, 서울대 상대를 나와 글로벌 기업 Nalco Korea 부사장을 지낸 김경호가 이사장이 맡아 ‘민족을 밝힌 100년, 미래를 이끌 100년’의 비전으로 뛰고 있다.
예천=김재산 기자 jskimkb@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