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초기 단계에서 실패하고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러시아는 압도적 군사 우위로 우크라이나 주요 도시에 대한 공세를 지속하고 있지만, 막강한 화력을 동원해 점령을 조기 완료하겠다는 애초 목표는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를 중심으로 한 서방 동맹의 단결, 우크라이나 전력과 항전 의지에 대한 오판 등이 침공의 최대 실패 요인으로 꼽힌다. 제재로 인한 경제 충격이 시작되고 있고, 러시아에 대한 국제사회 비난은 최고조로 달해 푸틴 대통령의 고립이 심화하고 있다.
케이틀린 탈마지 조지타운대 교수는 27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 기고를 통해 “푸틴 대통령의 핵 경보는 재래식 군사작전이 자신이 기대했던 정치적 결과를 달성하지 못한다고 여기는 분명한 신호”라고 분석했다. 재래식 무기를 대거 동원해 침공에 나서면 쉽게 전쟁을 끝낼 수 있을 것이라 여겼던 계획이 틀어졌다는 것이다.
믹 멀로이 전 미 국방부 차관보도 “푸틴 대통령이 핵무기 준비 태세를 강화하기로 한 결정은 전장에서의 손실에 대한 반응”이라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무모한 조치로, 우크라이나에서 자신의 군대가 예상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있는 표시”라고 말했다.
앞서 푸틴 대통령은 전날 “핵 억지력 부대의 특별 전투임무 돌입을 국방부 장관과 총참모장(합참의장 격)에게 지시했다”며 핵무기 발사 준비 태세 강화를 발표했다.
매튜 서섹스 호주국립대 전략국방연구센터 교수는 ABC 뉴스 기고에서 “푸틴 대통령이 3가지 오판을 저질렀다. 자신의 능력을 과신해 빠르고 깔끔하게 이길 수 있다고 여겼고, 우크라이나 정부가 순식간에 무너질 것으로 판단했다. 또 서구의 대응이 파편화되고, 선언적일 것으로 여겼다”고 분석했다.
서섹스 교수는 이어 “이 모든 것이 잘못된 것으로 판명됐다”며 “이는 전쟁의 진로, 러시아의 국제적 위상 및 자신의 정치적 지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실제 미 고위 당국자는 “러시아가 연료와 탄약 공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빠른 승리를 예상하면서 충분한 병력 보충 계획에 소홀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군도 이날 새벽 “적시에 연료와 탄약을 보충하지 못한 적군이 작전을 중단했다. 젊은 징집병이 대부분인 점령군은 지쳐서 사기가 저하돼 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러시아가 군 전력을 과신해 추가 지원 계획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서섹스 교수는 특히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미국의 탈출 제안을 거부한 발언은 국가 정신의 상징이 됐고, 우크라이나군과 시민들의 맹렬한 저항이 유럽을 움직였다”고 언급했다.
올가 스테파니시나 우크라이나 유럽-대서양 통합담당 부총리는 이날 “푸틴 계획대로라면 전쟁은 이미 끝났어야 했고, 우크라이나 시민은 러시아 국기를 들고 있어야 했다. 그러나 러시아 국기는 어디에도 없다”며 “그가 계획한 군사작전은 이미 무산됐다. 완전한 실패”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침공을 통해 나토를 흔들려 했던 푸틴 대통령 목표는 정반대의 결과를 낳고 있다. 서방 동맹은 초강력 제재 카드인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망 차단 조치 시행을 합의했다. 파트너국인 스웨덴과 핀란드에서조차 나토 가입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폴리티코는 “푸틴 대통령이 불가능한 일, 즉 진정한 유럽의 단합을 이뤄냈다”고 꼬집었다.
국제사회에서 러시아를 고립시키는 움직임도 계속 확산하고 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러시아의 침공에 대응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공급에 EU 재정 지원을 하고, 러시아 항공사의 역내 상공 운항과 러시아 국영 매체를 금지하기로 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이날 회의를 열고 러시아 규탄 결의안을 논의하기 위한 ‘28일 긴급특별총회 소집안’을 처리했다. 긴급 특별총회에선 비토권이 인정되지 않고 다수결 원칙이 적용된다. 국제사회에서 러시아가 처한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수 있다.
푸틴 대통령은 내부적으로도 정치적 시험대에 올랐다. 서섹스 교수는 “제재로 인한 러시아의 과두 정치인과 재계 지도자들의 실망, 대중의 불만이 결합해 대응이 시작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의 핵 위협 카드는 서방 동맹의 긴장을 키우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푸틴의 원대한 계획이 무너지고 있다. 그러나 궁지에 몰린 대통령은 훨씬 더 무자비하고 위험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 고위 당국자도 “초기 계획에 차질을 빚은 러시아가 포위 전술로 전환할 수 있다. 이 전술은 추가적인 (민간)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말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