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편 드는 듯한 태도를 보이자 우크라이나에서 반중 정서가 강해지고 있다고 홍콩 명보가 27일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주재 중국 대사관은 현지 교민들에게 장거리 이동시 중국 국기를 달라고 공지했다가 하루 만에 중국인 표식을 드러내지 말라고 당부했다.
중국은 러시아 침공 이틀째인 지난 25일(현지시간) 뒤늦게 우크라이나 주재 교민들의 철수 계획을 가동했다. 우크라이나 주재 중국 대사관은 공지를 통해 “현재 우크라이나 영공은 폐쇄됐고 빈번한 무장 군사 활동으로 여러 공항이 폭파되거나 폐쇄돼 비행 안전을 보장하기 어렵다”며 “교민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면 가장 먼저 교민을 철수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대사관은 또 별도 공지를 내 우크라이나 국민과 우호적으로 지내고 사소한 문제로 다투지 않도록 주의할 것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중국인 신분이 드러나는 표식을 함부로 드러내지 말라”고 덧붙였다.
중국 대사관은 전날까지만 해도 ‘외출을 자제하되 장거리 운전 시 중국 국기를 부착하라’고 했었다. 중국과 우호 관계인 러시아에 중국인 표식을 드러내면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취지였는데 하루 만에 말이 달라진 것이다.
이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공격에 맞서 결사항전을 벌이고 있고, 러시아를 지지하는 중국에 대한 감정이 급격히 악화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27일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중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규탄 결의안을 논의하기 위해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회의에서 다국적 평화유지군 결성의 근거가 되는 무력사용 권한 부여와 제재에 반대했다.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전날 안나레나 배어복 독일 외무장관과 통화하면서 “중국은 제재 수단을 이용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찬성하지 않으며 국제법에 근거하지 않은 독자 제재에는 더욱 반대한다”고 말했다. 중국 SNS에선 러시아 침공을 지지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이런 가운데 중국의 저명한 역사학자들이 우크라이나 침공을 ‘불의의 전쟁’이라고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는데 공개 두 시간 만에 삭제된 것으로 알려졌다.
대만 중앙통신사에 따르면 26일 오후 6시쯤 쑨장 난징대 역사학과 교수의 SNS 계정에 러시아 침공을 비판하는 성명이 올라왔다. 성명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자 핵무기를 보유한 대국 러시아가 힘이 약한 형제국인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대판 싸움을 벌이고 있다”며 “전쟁으로 유린당한 경험을 가진 국가로서 우리는 우크라이나 인민의 고통에 공감한다”고 밝혔다.
이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 발동을 강력하게 반대하고 우크라이나 인민의 국가 보위 행동을 지지한다”며 “러시아 정부와 푸틴 대통령이 전쟁을 중단하고 협상을 통해 분쟁을 해결하기를 강력히 호소한다”고 강조했다. 이 성명에는 쑨 교수와 왕리신 베이징대 교수, 쉬궈치 홍콩대 교수, 중웨이민 칭화대 교수, 천옌 푸단대 교수 등 5명이 이름을 올렸다. 성명이 공개되자 중국 웨이보 등 SNS에는 ‘다섯 마리 쥐가 중화에 소동을 일으킨다’는 식의 비난이 빗발쳤고 결국 해당 글은 두 시간이 지나지 않아 삭제됐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