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저명한 국제정치학자인 프랜시스 후쿠야마 스탠퍼드대 교수가 “대만은 미국이 구해줄 거라는 기대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일각에서 중국이 전쟁으로 인한 혼란을 틈타 대만을 공격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데 대해 이같이 언급한 것이다.
27일 대만 언론에 따르면 후쿠야마 교수는 전날 타이베이정경학원(TSE) 기금회가 주최한 ‘자유주의와 자유세계 질서의 위협’ 화상 연설에서 “대만이 스스로를 지키려는 결심이 우크라이나와 같지 않아 우려된다”며 “대만인들은 미국에만 의존하지 말고 기꺼이 희생할 각오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보기에 우크라이나인이 대만인보다 더 자국을 위해 싸우려 한다”며 “이러한 차이가 대만의 미래와 독립에 큰 위협”이라고 지적했다. 러시아군은 침공 나흘째인 이날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를 비롯한 주요 도시를 겨냥해 집중적인 공세를 벌이고 있지만 우크라이나군이 필사적으로 막아내고 있다고 AP통신 등 주요 외신이 보도했다. 미 국방부 고위 당국자는 브리핑에서 “러시아군이 매우 결사적인 저항에 부딪혔고 이에 따라 주춤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대만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양안(중국과 대만) 정세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대만과 우크라이나는 다르다”고 주장해왔다. 대만의 중국 담당 부처인 대륙위원회의 추타이싼 주임위원(장관급)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지정학적 위치, 경제적 중요성, 미국과의 관계 등 여러 여건상 대만을 우크라이나와 비교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후쿠야마는 중국의 지정학적 도전이 러시아보다 더 크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중국이 몇 년 전에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대만에 대한 무력 사용 같은 일이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가능하다고 여길 수 있게 됐다고 우려했다.
후쿠야마는 동유럽의 사회주의가 붕괴되기 시작한 1989년 인류의 역사는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로 진보의 종착점에 도달했다는 내용의 논문 ‘역사의 종언’을 발표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이후 소련이 붕괴한 92년 이 논문을 바탕으로 같은 제목의 책을 출간하면서 전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