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미사일 도발 재개…우크라사태 ‘악용’, 대선정국 노렸다

입력 2022-02-27 15:52
27일 오전 서울역 대합실에 시민들이 북한 탄도미사일 추정 발사체 발사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베이징 동계올림픽 기간 잠잠했던 북한이 27일 탄도미사일을 쏘아 올리며 28일 만에 무력시위를 재개했다. 우크라이나 침공과 관련해 대러시아 제재에 몰두하고 있는 미국을 상대로 압박 수위를 높인 것이다. 이와 함께 대선이 임박하면서 남측 정세에 유동성이 높아진 점을 노린 것이기도 하다.

합동참모본부는 “이날 오전 7시52분쯤 평양시 순안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발사된 탄도미사일 1발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비행거리는 약 300㎞, 고도는 약 620㎞로 탐지됐다. 군 안팎에선 중거리탄도미사일(IRBM)보다는 짧은 준중거리미사일(MRBM)을 정상 각도보다 높은 각도로 쏘는 ‘고각 발사’를 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북한은 2017년 2월에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북극성-1형’을 지상용으로 개조한 MRBM ‘북극성-2형’을 발사한 바 있다. 이번에 북극성-2형이나 그 개량형을 쐈을 가능성이 있다.

청와대는 서훈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 긴급회의를 열고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해 깊은 우려와 엄중한 유감을 표명했다. 다만 북한의 행위를 ‘도발’로 규정하지는 않았다.

NSC는 “한·미 연합의 확고한 대비태세와 우리의 강화된 자체 대응 능력을 바탕으로 중요한 정치 일정에도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우리 안보를 수호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중요한 정치 일정’인 대선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차단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북한은 새해 들어 미사일을 7차례 발사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및 핵실험 모라토리엄(유예) 해제까지 시사했다가 베이징올림픽 기간(2월 4~20일)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우방인 중국의 잔치를 훼방하지 않으려는 의도로 해석됐던 만큼 외교가에선 3월 4일 시작되는 중국 양회(兩會)와 베이징 패럴림픽(3월 4~13일)이 끝날 때까지 북한이 계속 도발을 자제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그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라는 급작스러운 변수가 북한의 셈법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로선 중국과 러시아에 이어 북한까지 전선이 확대될 경우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현 상황에 북한이 압박 수위를 높여도 이에 대응할 운신의 폭이 넓지 않다. 북한으로선 대미 협상력을 끌어올리는 데 적기인 셈이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북한의 무력 증강 의지를 부추겼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이 미국뿐 아니라 중국, 러시아 등 어떤 나라도 믿을 수 없다는 냉엄한 현실을 절감했을 것”이라며 “북한으로선 강대국의 전횡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자위적 국방력을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추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열흘 앞으로 다가온 한국 대선도 북한의 고려 대상이 됐을 수 있다. 대선에서 북한 문제가 부각되도록 하려는 의도와 함께 정부가 바뀌는 어수선한 분위기를 틈타 ‘도발의 일상화’를 고착시키려는 것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북한이 김일성 생일(4월 15일)과 한·미 연합훈련이 예정돼 있는 4월에 긴장을 최고조로 끌어올릴 수 있다”며 “북한의 모라토리엄 해제에도 뚜렷한 대응책이 없는 만큼 북한은 그 틈을 노리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영선 정우진 기자 ys8584@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