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망에서 차단된다. 해외 달러 결제가 원천 봉쇄되는 초강력 제재로, 현재 이란과 북한에만 적용되고 있다. 러시아의 외환보유고 사용을 막기 위해 중앙은행에 대한 제재도 시행된다.
미국과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영국, 캐나다 26일(현지시간) 공동성명을 내고 “러시아를 국제 금융(체계)으로부터 고립시키기로 했다”며 “조만간 이 조치들이 시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서방 동맹은 성명에서 “러시아의 전쟁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이어진 국제 규칙과 규범에 대한 공격이며, 우리는 이를 수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우리는 러시아에 책임을 묻고 이 전쟁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전략적 실패임을 확인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방 동맹은 이를 위한 조치로 러시아 은행을 SWIFT 시스템에서 제거하겠다고 설명했다. 백악관은 “이들 은행이 국제 금융시스템과 단절되고, 전 세계적으로 운영 능력이 손상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SWIFT는 200개 이상의 국가 및 지역에 있는 1만1000개 이상 은행과 금융 기관 간 내부 메시징 시스템 역할을 한다. SWIFT에서 러시아가 제외된다는 것은 러시아 은행이 해외 은행과 안전하게 통신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러시아 은행이 해외 은행과 거래에서 대금 결제를 받으려면 전화나 팩스를 사용해야 한다. 이란은 2014년 핵 프로그램 개발에 따라 SWIFT에서 제외됐다.
미국 고위 당국자는 “이란 모델을 적용해 SWIFT에서 러시아 은행을 분리하기로 했다. 세계에서 가장 핵심적인 금융 시스템에서 효과적으로 차단하는 규정을 시행할 것”이라며 “아마도 전 세계 대부분의 은행이 SWIFT에서 차단된 러시아 은행과의 거래를 완전히 중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SWIFT 제재는 우크라이나 사태 초기부터 거론돼 온 강력한 카드였지만 러시아와 거래가 많은 독일 등에서 이견이 계속돼 그간 시행이 미뤄져 왔다. 그러나 이날 안날레나 배어복 독일 외무장관과 로베르트 하베크 독일 경제부 장관이 트위터를 통해 SWIFT 제재 찬성 의사를 밝히면서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동영상 연설에서 “우리 외교관들은 모든 유럽국가가 러시아를 SWIFT에서 제외하는 결정을 내리도록 애써왔으며 이제 승리를 거뒀다”며 “러시아에 엄청난 손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방 동맹은 또 러시아 중앙은행의 지급준비금 사용을 방지하기 위한 제재도 부과하기로 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준비하며 서방 제재에 대비하기 위해 지급준비금을 6430억 달러가량 비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조치로 중앙은행이 제재 대상인 러시아 은행을 지원할 수 있는 능력이 봉쇄되는 셈이다.
고위 당국자는 “푸틴 중앙은행은 제재 영향을 상쇄할 능력을 잃게 된다. 루블은 더욱 하락해 인플레이션이 치솟고, 중앙은행은 무방비 상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마이클 번스탐 스탠포드대 후버연구소 연구원은 “러시아 중앙은행에 대한 전면적이고 즉각적인 제재는 가장 영향력 있는 금융 제재로, 모스크바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말했다.
서방 동맹은 러시아 정부와 연결된 러시아 부유층에 대한 시민권 제한 조치도 취하기로 했다. 일정한 금액을 투자한 외국인에게 시민권을 발행하는 이른바 ‘황금 여권’(골든 패스포트) 판매를 제한하는 것이다. 러시아 부유층이 서방의 시민권을 획득해 금융 시스템에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각국 관할 구역에 존재하는 제재 대상 개인 및 회사 자산을 식별해 동결하기로 했다. 또 허위 정보 및 기타 형태의 하이브리드 전쟁에 맞서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행정부 고위관계자는 “이번 주 범대서양 TF를 발족, 제재 대상인 러시아 기업과 정치인들의 요트, 저택, 동결 자산 등을 찾을 것”이라며 “이미 전날 프랑스 정부가 제재 대상 러시아 은행 소유의 화물선을 압수했다”고 말했다.
서방동맹은 “이날 발표한 조치 외에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격에 대해 러시아가 책임을 지도록 추가 조치를 취할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서방 동맹은 “미국과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영국, 캐나다는 푸틴의 전쟁 선택과 우크라이나 주권 및 시민에 대한 공격을 규탄한다”며 “러시아의 침공에 저항하기 위해 영웅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우크라이나 정부와 우크라이나 국민과 함께한다”고 언급했다.
대러 제재 효과는 서서히 가시화되고 있다.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전날 러시아의 장기 외화 표시 신용 등급을 ‘BBB-’에서 ‘BB+’로 내렸다. 이 등급은 ‘정크(투자 부적격) 등급이다. S&P는 BB+ 이하부터 투자 부적격 등급으로 분류하고 있다. 무디스도 ‘Baa3’ 상태인 러시아 신용등급 강등을 경고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