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전등화’ 키예프…푸틴, 우크라이나군에 “쿠데타 일으켜라”

입력 2022-02-26 00:25 수정 2022-02-26 00:47
25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소방대원들이 수도 키예프에서 로켓 공격을 받은 한 건물의 피해 상황을 살피고 있다. 우크라이나 경찰청 제공

러시아의 전면전 개시 이틀 만에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가 함락 위기에 놓였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군에 국가 지도부를 제거하라고 촉구하며 ‘친러 정권’을 세우겠다는 속내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AFP통신은 25일(현지시간) 키예프 북부 오볼론스키 지역에서 소총이 발사되는 소리와 함께 폭발음이 들렸다며 교전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이후 소셜미디어(SNS)에는 무장 군용차량이 오블론스키 도로를 이동하는 모습을 촬영한 영상이 올라왔다.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러시아군의 이동 경로를 알려달라”면서 “화염병을 만들어 러시아군을 무력화해달라”고 호소했다. 앞서 오전에는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 미사일을 상공에서 격추하는 과정에서 도시 내 최소 6번의 폭발이 발생해 민간인 부상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키예프의 한 주거지역 도로변에 로켓 잔해가 보인다. AFP연합뉴스

도시 밖에서는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끝에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군의 전략적 요충지인 키예프 인근 고스토멜 공항을 장악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 등이 전했다. 고스토멜 공항은 키예프에서 북서쪽으로 불과 7㎞ 떨어진 곳으로 키예프 타격을 위한 진입점으로 여겨지면서 러시아군의 핵심 표적이 됐다.

우크라이나 정부 관계자들은 “러시아군이 오늘 밤 수도 키예프 함락을 위한 총공격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한나 말리야르 우크라이나 국방부 차관도 러시아군이 키예프에서 약 10㎞ 떨어진 오블론 지역에서 수도로 진격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부 도시 리비우로 향하는 키예프의 주요 4차선 도로는 피란민 행렬이 수십㎞까지 늘어졌다. 차량이 없거나 갈 곳이 없는 국민들은 지하 대피소에서 공포에 몸을 떨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137명의 우크라이나인이 사망하고, 316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24일(현지시간) 폭격을 피해 지하철로 피신한 키예프 시민들이 새우잠을 자고 있다. AP연합뉴스

젤렌스키 대통령이 국가총동원령을 승인하며 결사 항쟁에 돌입했지만 키예프 함락은 초읽기에 들어섰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서방 정보당국 관계자는 AFP통신에 “우크라이나의 저항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키예프가 몇 시간 안에 함락될 수 있다”고 말했다.

AFP통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TV 연설에서 우크라이나군을 향해 국가 지도부를 제거하라고 촉구했다. 쿠데타를 종용한 것이다. 앞서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장관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목표에 대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정부를 전복시키려 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밝힌 바 있다.

우크라이나 국가방위군이 수도 키예프 중심부에서 러시아군의 진군에 대비해 전투 태세를 갖추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런 가운데 우크라이나는 중립국 지위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 가입 관련 논의를 포함해 러시아와 대화할 의사가 있다는 뜻을 전격 밝혔다. 크렘린궁도 우크라이나와 협상을 위해 벨라루스 민스크로 대표단을 보낼 준비가 돼 있다고 응답했다. 다만 이는 러시아가 “무기를 내려놓아야 협상을 하겠다”며 사실상 항복을 요구한 후 펼쳐진 상황이다.

전날 제재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에게 ‘전면 침공’이라는 뒤통수를 맞은 서방은 보다 강력한 추가 제재안을 들고 나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반도체 등 첨단 제품의 러시아 수출을 통제하고 러시아의 4개 주요 은행을 제재하는 내용 등을 골자로 한 포괄적인 경제 제재 방안을 발표했다. 유럽연합(EU)도 금융, 에너지, 교통 부문을 겨냥한 추가 제재에 합의한 데 이어 푸틴 대통령의 유럽 자산 동결이라는 강수를 뒀다. 러시아가 공세를 늦추지 않으면서 향후 추가적인 제재가 이뤄질 가능성도 높다.

24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내 군사작전을 선언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이 러시아 대통령 공식 홈페이지에 개시됐다. 크렘린궁 웹사이트 영상 캡처

우크라이나 사태 여파로 이날 유럽 주요국 증시는 3% 이상 급락했으며 국제 유가와 알루미늄, 니켈 등 원자재 가격은 상승했다. 국내 휘발유 가격도 고공행진 중이다. 25일 오후 기준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ℓ당 1749.9원으로 전날보다 3.7원 올랐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에너지뿐 아니라 원자재, 곡물 수급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정부는 분야별 수급 대응 체계를 가동하는 등 국내 수급을 철저히 관리하겠다는 방침이다.

임송수 기자 songst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