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st하우스는 위기의 동물이 가족을 찾을 때까지 함께하는 유기동물 기획 취재입니다.사연 속 동물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면 유튜브 '개st하우스'를 구독해주세요.
“하이고, 재롱아, 너 기도해, 너 아빠 빨리 나사사(나아서) 오게. 잘 허고(하고) 있어. 그러고 옷을 집어 입으니까 나를 이렇게 힐끔 쳐다보더니 이불 속으로 쏙 들어가면서 그렇게 슬픈 표정을 허고(하고) 들어가더라고요. 하도 그게 너무 안 좋아서 엉엉 울고 왔어, 오면서. 그러게 된 거예요.”
-독거노인의 단칸방을 청소하는 김순자(가명) 할머니
할아버지는 단칸방에 홀로 살면서 작은 말티즈를 가족처럼 끼고 계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지난해 겨울 뇌졸중으로 병원에 입원하시면서 강아지만 작은 방에 남겨졌죠. 그렇게 유일한 가족인 할아버지와 헤어진 5살 말티즈 재롱이는 아사 위기에 처합니다.
다행히 재롱이를 떠올린 사람이 있었습니다. 평소 할아버지 방 청소를 도와주던 도우미 할머니가 버려졌을 재롱이를 생각해낸 겁니다. 인정 많고 정도 넘치는 할머니. 홀로 방치된 재롱이를 찾아가 보고는 펑펑 울어버렸다고 합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체 가구 10곳 가운데 하나는 독거노인 가정입니다. 서울시의 노인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독거노인들은 코로나19의 유행으로 이웃 교류가 차단된 채 고립감과 고독사의 두려움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독거노인의 삶이 위태로워지면 동반자인 반려동물의 생존도 위협을 받게 됩니다. 하나뿐인 보호자 신변에 이상이 생기면 홀로 남은 반려동물은 굶주림과 추위에 방치되기 때문입니다. 재롱이가 겪은 일처럼 말입니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노인…3일 뒤 단칸방에서는
제보자 김순자(77) 할머니는 지난해 서울 양천구의 노인 공공일자리에 참여했습니다. 사회복지사와 동행하면서 거동이 불편한 독거노인들의 단칸방을 매주 청소하는 것이 할머니의 역할이었죠. 할머니가 돌보는 독거노인 중에는 5㎏ 남짓한 말티즈를 기르는 김철수(77·가명) 할아버지도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는 재롱이를 자식처럼 의지했지만 거동이 불편한 탓에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면서 “대신해서 사료를 챙기고 배변을 치워주면서 내가 재롱이와 정이 많이 들었다”고 합니다.
지난해 11월, 할아버지는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맙니다. 병원으로 긴급 후송됐지만 철수 할아버지는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현재 상태로는 여생을 병상에서 지내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안타까운 소식이 할머니에게 전해진 건 그로부터 3일 뒤. 순자 할머니는 가장 먼저 재롱이를 떠올렸습니다. 누구보다 할아버지네 속사정을 잘 아는 할머니는 돌보는 이 없이 남겨졌을 재롱이 걱정에 곧바로 단칸방으로 향합니다.
구조대가 다녀간 그 상태로 방문은 열려있었고, 차가운 방바닥에는 이불만 널브러져 있었죠. 할머니는 “여러 차례 ‘재롱아, 재롱아’ 이름을 불렀더니 이불 속에서 재롱이가 힘없이 얼굴을 내밀었다”고 합니다.
77세 고령으로 동물을 구조할 여력이 없는 순자 할머니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굶주린 재롱이의 빈 밥그릇에 사료와 물을 채워주는 것뿐이었습니다. 할머니는 “사료를 챙겨준 뒤 단칸방을 나서는데 재롱이의 표정이 그렇게 슬플 수 없었다”면서 “자꾸만 표정이 떠올라 엉엉 울면서 돌아왔다”고 전합니다.
독거노인 실려 갔지만, 재롱이는 남겨진 이유
단칸방에 홀로 남겨진 재롱이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현행법상 동물 보호자의 사유(사망, 입원, 구금 등)로 반려동물이 방치된 경우 보호 조항은 없습니다. 서울, 대구 등은 예외적으로 ‘긴급보호동물 인수제’를 운영해 동물의 소유권을 인계받은 뒤 구조하지만 이는 극히 일부 지자체에서만 이뤄지고 있습니다.
긴급 인수제가 작동하려면 경찰, 소방 등 출동 기관의 협조가 필요합니다. 현장에서 동물을 최초로 발견할 가능성이 큰 공무원의 제보가 있어야 지자체도 움직일 수 있지요. 하지만 취재 결과, 경찰청 및 소방청 현장 매뉴얼에는 남겨진 반려동물 관련 대응 의무가 없었습니다. 독거노인이 병원에 실려갔는데도 재롱이가 3일간 단칸방에 남겨진 이유입니다. 할머니가 가보지 않았다면 재롱이는 그대로 아사했을 겁니다.
재롱이는 할머니 신고로 출동한 구청 측에 긴급 인수돼 양천구의 동물보호소에 보내졌고 입양 혹은 안락사의 갈림길에 서게 됐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재롱이에게 기적처럼 임시보호자가 나타납니다. 양천구의 사설 고양이쉼터 ‘길동이하우스’ 운영자인 김현정(54)씨입니다.
20여마리 고양이와 기묘한 동거…재롱이 가족을 모집합니다
지난 22일 국민일보는 서울 양천구의 고양이쉼터에서 재롱이를 만났습니다. 덩치가 비슷한 20여 마리의 유기묘 틈에서 넉살 좋게 간식을 얻어먹고 장난감을 갖고 놀더군요. 심술 난 고양이가 주먹으로 뒤통수를 때려도 그저 고분고분히 자리를 피하는 재롱이. 동물병원에서 혈액 검사를 받는 와중에도 잔짖음 한번 보이지 않을 만큼 온순했습니다. 독거노인의 반려견들이 일반적으로 드러내는 사회성 부족으로 인한 입질, 잔짖음 문제는 전혀 없었죠.
임보자는 “재롱이는 워낙 성격이 온순해서 고양이나 다른 반려견과도 잘 지낸다”면서도 “긴급 구조된 처지 탓인지 기가 죽어 보여 안쓰러울 때가 있다”고 설명합니다.
성격은 전혀 문제가 없지만 재롱이는 과체중입니다. 현재 체중 5.8㎏에서 적정 체중인 4.5㎏까지 감량해야 하죠. 이날 현장에 동행한 유기견 재활교육 전문가 나비쌤(41)은 “거동이 불편한 노인은 과도한 사료와 사람 음식으로 동물을 보상하려는 심리가 강한데 이는 동물에게 합병증과 관절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에 따라 재롱이의 일일 사료 급여량은 종이컵 2개(160g)에서 적정 급여량인 종이컵 1개(80g)로 조정됐습니다.
위기에서 구조된 말티즈 재롱이의 가족을 기다립니다. 입양을 희망하는 분은 기사 하단의 입양정보를 확인해주세요.
■사회성 만점의 말티즈, 재롱이의 가족을 기다립니다
-이름: 재롱이 / 5살 말티즈 / 암컷 (중성화 필요)
-사람을 좋아하며 온순한 성격. 다른 동물에게 공격성 없음
-현재 과체중으로 간식 및 사료 급여 제한 필요
■재롱이는 개st하우스에 출연한 84번째 견공입니다. (66마리 입양 완료) 입양자에게는 반려동물 사료 브랜드 로얄캐닌이 동물의 나이, 덩치, 생활습관에 맞는 '영양 맞춤사료' 1년 치 (12포)를 후원합니다.
■입양 문의는 아래 링크를 클릭해주세요
= http://naver.me/xkeLZCXq
이성훈 기자, 최민석 기자 tell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