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군의 교전이 체르노빌 원전 부근에서도 벌어지면서 국제 사회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방사능 폐기물 저장소가 러시아 포격에 맞았다는 외신 보도도 나왔다.
AP통신은 24일(현지시간) 체르노빌 부근에서 벌어진 전투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첫날 가장 위험한 순간이었다고 전했다.
체르노빌 원전은 1986년 폭발사고가 발생했고 다량의 방사성 물질이 방출되면서 수많은 목숨을 앗아갔다. 원전 반경 30㎞ 지역에서 지금도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이 사고로 9000명 이상이 숨졌고 벨라루스 연구자들은 방사성 물질에 노출돼 암에 걸려 숨진 사람들을 포함하면 재난 사망자가 11만5000 명 정도라고 추산했다.
체르노빌 원전은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 북쪽으로 약 130㎞ 떨어져 있다.
해당 지역에서 교전이 발생하면서 우크라이나는 체르노빌 원전 시설 통제권을 완전히 잃었다. 미국 고위 정보 관리는 러시아군이 수도 키예프로 진격하기 위해 체르노빌을 장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은 “러시아군의 완전한 무차별 공격 뒤에 원전이 안전하다고 말하긴 어렵다”며 “이는 현재 유럽에 대한 가장 심각한 문제 가운데 하나”라고 밝혔다.
대통령실 측은 “원전 원자로와 방호벽, 폐기물 저장소의 안전 상태를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AP통신에 전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우리 군인들은 1986년 원전 참사의 비극이 재현되지 않도록 싸웠다”고 말했다. 안톤 게라셴코 우크라이나 내무부 장관 고문은 “체르노빌에 대한 공격은 우크라이나, 벨라루스는 물론 유럽연합(EU) 국가들까지도 방사능 먼지를 퍼뜨릴 수 있다”고 말했다.
AP통신은 체르노빌 원전 상황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방사능 폐기물 저장소가 러시아의 포격에 맞았고, 방사선 수치가 올라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다만 AP통신은 방사선 수치 증가가 즉각 확인되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36년 전 폭발했던 체르노빌 원전 원자로 4호기에는 콘크리트 방호벽이 씌워져 있다. 방호벽에 금이 가는 등 붕괴 우려가 커져 철제 방호벽을 덧씌우는 작업이 진행됐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이날 성명을 통해 원전 인근에서의 교전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군사 행동을 최대한 자제해 달라고 호소했다.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은 “현재까지 보고된 사상자나 시설 손상은 없다”면서도 “방해받지 않는 핵시설의 안전한 운영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