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유감의 뜻을 밝히며 국제사회의 대러시아 제재에 동참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사태에 관한 서훈 국가안보실장의 보고를 받고 “무고한 인명 피해를 야기하는 무력 사용은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말했다고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전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대한민국은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 무력 침공을 억제하고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경제제재를 포함한 국제사회의 노력에 지지를 보내며 이에 동참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외교부도 오전에 기자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에서 “러시아가 어떠한 형태로든 전면전을 감행할 경우, 우리 정부로서도 대러 수출통제 등 제재에 동참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전했다. 처음으로 대러 제재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다. 미국과 유럽연합(EU), 호주, 일본 등이 속속 대러 제재에 나서는 가운데 미국의 주요 동맹 중 한국만 소극적이라는 비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제재 동참의 조건으로 내세운 ‘전면전’에 대한 판단은 유보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전면전이 무엇인가를 우리가 규정할 필요는 없다”면서 “선제적으로 제재 항목을 정할 상황은 아니고, 국제사회의 제재에 우리와 긴밀하게 연결된 부분이 있어 자연스럽게 동참할 수 있는 부분은 하게 될 것이라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은 서방의 핵심 기술에 대한 러시아의 접근을 차단하기 위한 수출 통제 수단을 준비해 왔다. 외교부가 제재를 언급하며 ‘수출 통제’를 예로 들었듯이 우리나라가 제재에 참여한다면 미국 주도의 수출 통제에 동참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은 중국 기업 화웨이에 치명타를 입혔던 ‘해외직접생산품 규칙’에 근거해 반도체 등 핵심 부품 및 전자기기 등의 수출 통제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외국 기업의 제품이더라도 제조 과정에서 미국의 소프트웨어나 기술이 사용됐을 경우 수출을 금지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이다. 따라서 우리 정부가 독자적으로 대러 수출 통제에 나서지 않더라도 국내 기업이 영향권에 들어갈 수 있다.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체류 중인 교민을 보호하는 방안도 재차 점검했다. 외교부는 지난 13일부터 우크라이나를 ‘여행금지’ 지역으로 지정했지만, 현지에는 아직 교민 64명이 남아 있다. 이 중 36명은 철수할 예정이지만 나머지는 잔류를 희망하고 있다. 외교부는 이들에게 계속 철수를 권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주우크라이나 한국대사관은 전날 홈페이지와 SNS 긴급 공지를 통해 “우크라이나 체류 교민들은 만일의 사태가 발생할 경우 신속히 안전 지역 또는 안전 장소로 이동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둘 것을 강력히 권고드린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현지의 비행금지구역 선포 등의 여건을 고려했을 때 비상시 교민들을 이송할 군용기 투입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육로를 통해 인근 국가나 지역으로 이동하는 방안 등을 마련해놓고 있다.
외교부는 이날 러시아 내 우크라이나와의 접경지역인 로스토프, 벨고로드, 보로네시, 쿠르스크, 브랸스크에 여행경보 3단계(출국권고)를 추가 발령했다. 현재 이 지역에 체류 중인 교민은 11명인 것으로 파악됐다.
김영선 박세환 기자 ys8584@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