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가 24일 우크라이나에 군사 행동을 감행한 러시아를 대상으로 제재에 나설 수 있음을 시사했다. 정부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상황과 관련한 국제사회의 제재에 동참 의사를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외교부는 이날 오전 “제반 상황에 비춰볼 때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침공이 임박한 것으로도 볼 수 있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미국 등 우방국들과 대응 방안을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며 “국제사회의 거듭된 경고에도 러시아가 어떠한 형태로든 전면전을 감행할 경우, 우리 정부로서도 대러 수출통제 등 제재에 동참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어 “정부는 이러한 조치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우리 경제와 기업에 대한 피해가 최소화될 수 있도록 가능한 방법을 검토하고, 지원해 나갈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주변 4강이자 주요 협력대상국인 러시아에 대한 제재 동참은 외교적으로도 파장이 클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청와대는 이날 서훈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긴급 상황점검회의를 열어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한 대책을 논의했다. 이 회의에서 정부의 조율된 입장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는 제재 참여 기준으로 제시한 ‘전면전’이 어떤 상황인지에 대해선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최영삼 대변인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본격화한 직후 열린 정례브리핑에서 “현재로서는 우크라이나 상황을 우리 정부도 시시각각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구체적인 상황에 대해서는 예단해서 말씀드리는 것은 삼가고자 한다”고 말했다.
2014년 크림 병합 때는 제재 불참…“美 동맹 역할” 목소리
우리 정부는 그간 우크라이나 사태가 평화적으로 해결되는 것이 우선이라며 대러 제재 동참 여부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보여왔다.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병합했을 때도 우리는 미국 측 협조 요청에도 독자 제재 등 구체적인 행동을 취하지는 않았다. 당시 박근혜 정부가 ‘동북아평화협력 구상’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등 러시아와의 협력을 전제로 한 동아시아 구상을 내걸고 있어 한반도 문제에 중요한 상대인 러시아와의 관계를 고려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에너지 수급 및 공급망 악화 가능성 등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해석됐다. 연 200억달러에 이르는 대러시아 무역이나 현지에 진출한 자동차 산업 역시 고려 대상이었다.
그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정황과 관련 소식이 전해지면서 우리 정부도 미국 동맹으로서 동참 필요성이 커졌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유럽연합(EU), 호주, 일본 등이 속속 대러 제재에 나서는데 우리만 소극적이라는 비판이 반복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침공에 앞서 고강도 대러 제재를 천명한 미국은 이번에도 우리 측에 협력을 요청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반도체, 자동차, 가전·전자제품 등을 러시아에 수출하고 있는 우리 측의 수출통제 참여가 효과적이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다.
아직 정부가 제재에 어떤 방식으로 동참할 것인지는 현재로서 불분명하나 실제 시행되면 국내 기업들에도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전망도 나온다.
외신, “우크라 곳곳 폭발음”…전면전 현실화
우크라이나 현지 상황은 전면전의 기색이 짙어지는 모습이다. 외신들은 수도 키예프와 인근 국제공항 등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폭발음이 들렸다고 보도하고 있다. 러시아 군 당국은 미사일을 통한 정밀 타격이 이뤄지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영토에 상륙했다는 소식도 전해지고 있다.
CNN은 키예프 인근에서 들린 폭발음은 미사일 공격 때문이라고 우크라이나 내무부 발표를 인용해 전하기도 했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트위터에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전면전을 개시했다”고 밝혔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가 강행한 군사 작전에 대해 “정당한 사유가 없는 침공”으로 규정하고 즉각 가혹한 제재를 가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은 러시아에 대한 금융제재와 더불어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서방의 핵심 기술에 대해 접근을 차단하기 위한 수출 통제 수단을 준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또 푸틴 대통령 측근들과 그 가족을 대상으로 한 추가 제재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김성훈 기자 hun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