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출신의 세계적인 축구 명장 스벤 예란 에릭손 전 감독이 2010년 남아공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북한 측으로부터 본선 조 추첨 조작을 요구받았다고 폭로했다.
에릭손 전 감독은 24일 영국 BBC 라디오5의 ‘가장 기이한 스포츠 범죄’ 코너에 출연해 과거 북한 방문 도중 겪은 황당한 에피소드를 전했다.
당시 노츠 카운티(잉글랜드 프로축구팀) 단장을 맡고 있던 에릭손 감독은 북한의 초청을 받아 평양을 방문했다. 표면적인 초청 이유는 북한의 광물 매장량을 조사한 뒤 외국과 공동 채굴하는 사업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에릭손 전 감독은 “북한 관리가 찾아와 ‘우리를 도와 달라’고 부탁하기에 축구공이나 축구화 등등의 지원을 의미하는 것으로 알고 흔쾌히 수락했다”면서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뜻밖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 관계자가 ‘(월드컵 본선) 추첨에 관여해 달라’고 했다. ‘그렇게 할 수 없다. 그것은 범죄다’라며 여러 차례 거부했지만 그들은 집요했다”고 전했다.
당시 북한은 남아공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을 통과해 44년 만에 월드컵 본선 출전권을 확보한 상태였다. 최종예선 B조에 속한 북한은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등 중동의 강호들을 밀어내고 조 2위에 올라 한국(조 1위)과 함께 본선에 직행했다.
에릭손 전 감독은 “그들은 내가 (월드컵 본선 조 추첨) 조작이 가능한 사람이라고 믿고 있었다. 단지 하기 싫어서 거부하는 걸로 여겼다”면서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들이 나를 평양으로 초대한 이유 또한 그것(추첨 조작) 때문이었던 것 같다”고 주장했다.
에릭손 전 감독의 북한 방문은 2009년 10월에 이뤄졌으며 “사실 북한에 가기를 원치 않았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노츠 카운티 구단을 인수한 러셀 킹으로부터 북한의 광산에 대한 독점 개발권을 따내면 구단에 경제적 도움이 될 것이란 설득을 받아 방문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때 방문으로 에릭손 전 감독은 북한 축구 대표팀 사령탑 계약설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에릭손 감독은 남아공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북한과 ‘적장’으로 만났다. 공교롭게도 북한과 같은 조인 코트디부아르 지휘봉을 잡아 북한전 완승을 이끌었다. 당시 북한은 브라질, 포르투갈, 코트디부아르와 함께 ‘죽음의 조’로 여겨진 G조에 속했다. 본선에서 북한은 브라질과 첫 경기에 1-2로 패하며 선전했지만 이후 포르투갈(0-7패), 코트디부아르(0-3패)에 완패하며 3전 전패로 탈락했다.
앞서 에릭손 전 감독은 2001년부터 2006년까지 잉글랜드 대표팀을 지휘했고, 2008년부터 2009년까지 멕시코 대표팀을 맡는 등 세계적인 명장으로 이름을 날렸다.
김성훈 기자 hun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