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전쟁과 항쟁, 치유와 화해의 성찰을 말하다.”
전 세계 ‘마스크 현상’으로 연극과 공연예술산업은 타격을 받고 있다. 공연계는 사회적 지침과 방역 패스, 좌석 거리두기를 통한 안전한 ‘공연 감상’을 유도하고 있는데도 극장은 관객 감소로 이어지고 있고 수 개월 작품 연습은 때로 ‘온라인 영상’으로 관극할 수밖에 없는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연극영상화’의 온라인 플랫폼도 다양화되고 있는 추세다. 기다렸다가 연극을 보는 시대에서, 보고 싶을 때 실시간으로 볼 수 있게 됐다. 그러나 TV영화 등 특정 장르와 변별력 없는 연극 언어의 영상화는 팬데믹시대에 무대를 읽고 바라보는 보조적인 수단이다. 여전히 연극은 무대에서 살아가는 ‘현장 예술’이란 점을 감안 할 때 텍스트는 생동하는 언어로 무대와 객석 사이에 존재될 때 허구의 삶도, 비현실적인 인생 이야기도 공감을 가지게 된다.
지난해 10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국제 공동 창·제작 공연개발>로 베트남 작가 바오 닌의 작품 <전쟁의 슬픔>(1991)을 <슬픔과 씨앗>으로 재해석해 영상 쇼케이스 상영회를 마련하면서 연극의 영상화를 성공적으로 담아내 높은 평가를 받은 바 있다. 이 오딘극단이 국내 배우들과 협업해 무대로 돌아왔다. 3년의 여정을 묵묵히 준비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하, ACC, 전당장 이강현) <국제 공동 창제작 공연 사업> 첫 프로젝트 작품을
<전쟁의 슬픔>, <슬픔과 씨앗> 공연과 영상쇼케이가 성공을 거두면서도 ACC측은 공연을 예측 할 수 없었다. 팬데믹 상황에서 오딘극단과 한국 배우, 공동 연출들의 협업공연이 세계초연되는 덴마크와 한국무대 공연이 불투명한 상태였다.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재 점화되었고 오미크론 상륙은 강한 속도를 내며 바이러스의 강풍으로 확진 사례도 늘고 있는 시점이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북유럽연극연구소-오딘극단(NTL-OT), 이동일 연출과 한국공연프로듀서협회 등 창⋅제작 프로젝트를 준비해온 예술가들과 스태프들은 국내 공연을 위해 장기간 협업하면서 세계적인 바이러스 위협에도 공연을 준비해 왔다. 창⋅제작 워크숍(2019)과 시범 공연(2020)을 거치면서 신뢰가 쌓여서 가능해 졌다. 지난해 12월 덴마크 공연을 앞두고 무대 집념은 더 강해졌다. 동서양 문화를 세계적으로 대표할 수 있는 창작 공연을 공동으로 만들자는 연대감도 커졌다.
국내 예술가들은 덴마크로 날아갔고 오딘극단 배우들과 생활하면서 공연을 준비했다. 워크숍도 참여하면서
이러한 결정으로 지난 1월 오딘극단 배우와 스태프들은 국내 입국 뒤 10일의 자가 격리를 끝내고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의 공연 준비를 하면서 공연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이번 공연은 국내 배우들과 예술가, 스태프들이 세계적인 오딘극단과 협업해 팬데믹 여파에도 창⋅제작의 성과를 만들어내는 공연 사례로 남게 됐다. 전작(前作)은 베트남 전쟁의 시공간을 초월해 한국 사회로 광주의 5·18항쟁의 그날로 죽음과 비극을 포획해 여전히 항쟁과 전쟁, 죽음이 치유되지 않고 있는 동시대로 그려냈다. 배우들의 진지한 비극적 놀이 행위는 씨앗을 비롯한 다양한 오브제로 활용되고 관객들에게 연극적 체험의 의식 행위로 무대가 살아났다. 특히 오딘극단의 표현 방식과 타악 연주, 장구, 아코디언, 피아노, 태권도, 그리고 신체의 한계를 넘어선 배우의 곡예는 인물의 정서와 감정을 신체 악보의 멜로디로 연주되는 경이로운 현존의 연기로 구현시켰었다.
전작은 5·18민주화 항쟁과 역사적 죽음들, 베트남과 전쟁 사이의 비극성을 다루었다면 이번
여전히 치유될 수 없는 역사적 기억과 전쟁 그리고 민주열사
이번 무대는 정사각형 중앙 무대를 사이를 두고 객석(관객)이 마주 보고 극을 바라보도록 되어있다. 객석과 무대 사이는 길처럼 공간이 구조화 되어 있는데, 작은 강과 길을 사이에 두고 파노라마처럼 극의 전경을 바라보는 보게 한다. 좌측으로는 전통악과 양악으로 극적인 장면을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오케스트라 단상(壇上)이 세워져 있고 무대 양편으로는 각 장면의 시공간의 흐름을 추상적으로, 때로는 역사의 민주 열사의 망자(亡者)와 사건들을 소환하는 이미지 서사 공간으로 활용되는데
죽어서도 한국 사회를 떠날 수 없는 민주 열사들은 망자가 되어 서도 ‘독재 타도, 군부 철폐’를 외치고 70~80년대의 그날을 기록한 열사들은 지금도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는 강렬한 사진으로 스크린에 투영되기도 하면서 역사의 그날을 환기한다. 무대 공간은 전쟁과 죽음 그리고 역사를 변주하는 오브제들을 활용해 때로는 사건의 도구로, 전쟁터로, 죽음으로, 역사적 현장으로 시공간을 초월한다. 특히 앞·뒤 객석을 이원화 해 그 사이 공간을 과거와 현재를 있는 몽환적인 길로 처리하면서 무대 공간의 활용을 높였다. 길은 동서양을 잇는 전쟁터로 살육의 현장으로 열사들의 그날로 전이되는 한국 사회 핏물의 길가다.
이번 무대에서도 상징적인 장치들이 눈에 띄는데 무대 중앙에는 검붉은 해바라기 씨앗을 300㎞ 정도 될 육중한 무게는 광목(廣木)으로 둘레를 만들고 중앙에는 형체를 알 수 없는 귀리인형이 놓여있다. 씨앗과 귀리인형은 잔혹한 역사의 시간과 전쟁, 민주열사의 죽음들이다. 살육의 전쟁터에서 폭력의 시대에서, 민주화 항쟁에서, 무참히 쓰러지고 죽어간 전쟁의 전사자들과 열사의 혼령들이다. 그 주변으로 역사적 망자들을 소환해 치유의 굿판을 벌이고 허공에 매달린 그네에는 군복 상의 한 점이 매달려 여전히 멈추지 않는 전쟁과 죽음의 역사로 현재화 된다. 이러한 공간과 오브제의 상징적 장치들이 때로는 알 수 없는 전쟁의 시대로 70년대 군부 독재를 지나 5·18민주화 항쟁과 80년대의 정치적 죽음으로 사라져간 민주열사들을 시대적 공간으로 변주된다.
이번 무대에서는 전작과 다르게 비디오 아트의 활용을 높였는데, 개방적인 공간성을 장면으로 구현하고 시공간의 연속성을 탄력적으로 표현시킨다. <슬픔의 씨앗>은 오딘극단의 문화 상호주의 시선으로 원작을 재 해석해 베트남과 한국전쟁, 5·18민주항쟁의 폭력과 잔혹한 전쟁의 잔상을 비추고 민주화 열사들을 소환해 한국 사회의 악몽을 동시대성으로 접근했다면 이번 무대는 오딘극단 배우들의 피지컬 스코어 리듬과 옴니버스식 장면화를 통해 ‘전쟁’을 동서양의 보편적인 주제로 접근하고 있다. 한국 사회 민주 항쟁과 민주열사들의 역사성은 한국적인 연희와 리듬, 이미지로 각인된 역사의 기억을 소환하기도 하면서 프롤로그는 전쟁터에서 민주 항쟁의 역사에서 죽음으로 사라져간 열사들의 치유의 의식을 <처용무>로 처리한 것이 인상적이다.
무대 바닥은 천문도(天文圖)를 입체적인 비디오 아트로 활용해 전쟁과 항쟁의 질긴 핏물의 역사의 시간을 담아낸다. 전통 타악 리듬에 따라 ‘처용’은 귀리인형과 씨앗을 혼령으로 삼아 전쟁의 폭탄을 안고 살아가는 동시대를 향한 평화의 굿판을 벌인다. 오방색으로 두른 처용의 강렬한 의상과 그를 따르는 춤사위꾼들은 만신(漫神)처럼 귀리인형과 씨앗의 원형 둘레를 돌며 전쟁과 항쟁의 역사의 망자들을 불러내는 의식 행위를 하기도 하고 특정적인 민주화운동과 열사들을 유추할 수 있는 나레이션으로 장면의 분위기를 극대화시킨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같은 군사 정권 시절 시대적 열망을 담아내는 김지하 시인의 ‘시어’를 반복적으로 들어내기도 하면서 동학운동부터 한국전쟁을 거쳐 70~80년대의 역사로 사라져간 열사들을 귀리인형과 씨앗으로 혼령을 불러내는 듯한 의식을 하면서 망각되어가는 그날의 기억을 소환한다.
1장부터 3장까지의 에피소드는 “언제나 전쟁이 있었고, 앞으로도 전쟁은 계속될 거야”라는 극중 대사처럼 청년을 통해 바라보는 전쟁의 이야기다. 전작<슬픔의 씨앗>을 돌아보자. 극중 인물 끼안을 통해 바라보는 전쟁의 악몽과 글쓰기, 프엉의 비극적인 이야기로 베트남 시공간을 초월해 한국, 캄보디아, 중국, 홍콩 등 전쟁의 내전을 겪었거나 오늘날 전쟁의 신호음과 민주 항쟁과 함성 소리가 들리는 국가로 이동해 <전쟁의 슬픔>서사를 오딘극단의 현존하는 연기와 장면의 놀이적 재현성으로 체험시켰다. 전작 무대는 전쟁터의 잔혹한 현장과 죽음의 축제를 즐기는 환희로 채워지고 죽음과 삶, 잔혹한 전쟁터, 프엉의 비극은 순수한 영혼이 유린되고 박탈 당한 죽은 자로 표상된다. 씨앗은 프엉의 무덤으로, 파괴된 한 인간의 영혼을 치유하는 의식 행위 오브제로 변주되면서 그녀의 죽음은 5·18 광주항쟁으로 죽음의 현장과 열사의 죽음들로 환치 되는 상징성을 투사했다면 이번 무대에서는 베트남 전쟁을 이탈해 동서양의 동시대적인 현재성으로 접근하고 있다.
이번 무대에서는 샤먼과 청년의 어머니를 등장시킨다. 전작의 끼안처럼 ‘청년’은 여전히 멈추지 않는 전쟁의 길가를 배회하고 샤먼으로 분한 배우 이영란은 마치 청년에게 주술적 최면(催眼)을 걸어 과거 전쟁의 기억을 마주시키고 군복을 입고 총칼을 겨누며 살육의 전쟁터를 배회하며 ‘자신도 전쟁의 일부였다’ 는 사실을 알게 된다. 때로는 시대의 청년으로 한국 사회를 배회하며 펼쳐지는 과거-현재의 전경은 여전히 멈추지 않는 전쟁터로 열사들의 외침과 죽음으로 오늘을 배회하는 장면들이 시적인 은유와 배우들의 동적인 리듬으로 그러지고 마지막 장면은 청년과 전쟁의 길가를 씻김으로 치유한다. 오딘극단 배우들의 날 것과 현존시키는 연기들에도 우리 배우들의 무게감 있는 역량으로 동서양적인 앙상블을 조화롭게 무대화시켰다.
<전쟁의 슬픔, 슬픔의 씨앗>은 전쟁과 민주 항쟁의 비극성을 담아냈고 <전쟁 후에>는 기억과 치유, 평화의 목마름을 환기한다. 오딘극단 공동 연출과 이동일 연출은 처용무와 샤먼의 무속성을 무대화 해 망자를 위한 치유와 구원 행위를 통해 전쟁과 민주 항쟁 열사들의 역사적 비극을 투영하고 오딘극단 배우들은 광활한 전쟁과 죽음의 놀이로 무대를 역동적으로 활보한다. 특히 배우 이영란은 그 자체로 극중 인물을 현존화 했다. 그만큼 이 배우의 표현의 언어는 연기라 할 수 없을 정도로 내면으로 체득되어 있다. 필요한 살점들만 연기에 깊게 박혀 숙성(熟成) 되어 있고 담백한 배우의 무게감으로 무대에서 살아 존재하는 배우다.
▶이번 공연에 연출은 맡은 ‘엘리자베스 마리 라벡 방케’는 오딘극단(NTL-OT)수석 프로듀서로 배우와 드라마트루그 및 감독을 맡고 있다. 특히 고전 연극과 극작, 현대극 공연에 대한 강의를 하며 극작 및 감독(연출)을 30편 이상 해왔다. 이동일 연출은 유라시안 씨어터 인스타튜트 대표로 연출가이자 극작가이다. <로보틱아트 “ROBOT NAMU”>,<디지로그 뮤지컬 “The Play”,<밀레니엄프로젝트 “DMZ 2000”>,<사운드 퍼포먼스 “야생의 꿈”>,<탈춤:내면여행>,<사이버플라워>,<500백년 세 개의 원들>, <멀티미디어 심청> 등 작가와 연출해 오고 있다. 이번 공연 사진 및 미디어 아카이빙을 최근우 작가가 맡았으며 국내 배우로는 <곽동철, 김태성, 문현, 박혜준, 오지숙, 문상준, 오경자, 이우주 등과 전상진, 오소후, 한종호> 등의 시민 배우가 출연했다.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