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국경 주변에 배치된 러시아군 80%가 진격 태세를 갖췄다는 평가를 미국이 내놨다. 미국은 러시아가 언제든 전면전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미국과 서방이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시작하자 러시아가 곧 보복 의사를 밝히는 등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로 올랐다.
미 국방부 고위 당국자는 23일(현지시간) 비공개 브리핑에서 “15만 명 이상의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접한 러시아, 벨라루스 접경지대에 배치돼 있다. 명령만 받으면 전면적으로 침공할 수 있을 정도로 준비를 마쳤다”고 평가했다. 당국자에 따르면 러시아군 80%는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불과 5∼50㎞ 이내에 배치됐다. 미국은 자체 정보와 위성사진 등 시각 증거 등을 토대로 이 같은 분석을 내렸다고 전했다.
이 당국자는 “러시아가 거의 100%의 군대를 침공에 필요한 위치로 옮겼다”며 “침공할지 안 할지는 정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달렸다. 이제 언제라도 침공할 수 있을 것”이라며 “오늘이 그날이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러시아의 천연가스 송유관 사업인 ‘노르드스트림-2’ 주관사 임원에 대한 제재를 행정부에 지시했다.
백악관은 이날 대통령 명의 성명을 통해 “미국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경 주변에 군대를 배치하기 시작한 이후 강력하고 통일된 대응을 위해 동맹 및 파트너와 긴밀히 협력해 왔다”며 “오늘 노르드스트림-2 AG와 해당 기업 임원들에 제재를 가하도록 행정부에 지시했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조치는 러시아에 대한 초지 제재의 또 다른 부분”이라며 “러시아가 계속 긴장을 고조한다면 우리는 주저하지 않고 추가 조처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세계가 러시아 가스 의존도를 줄일 동기를 푸틴 대통령 스스로 제공했다고 지적했다.
노르드스트림-2 AG는 송유관 사업 주관사다. 러시아 회사인 가즈프롬이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AG에 대한 제재는 곧 러시아 기업에 대한 제재를 의미한다.
유럽연합(EU) 이사회도 러시아 국방장관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비서실장, 하원의원 등을 겨냥한 제재를 공식 채택했다.
EU 외교정책을 총괄하는 호세프 보렐 외교·안보 정책 고위대표는 러시아의 이 같은 결정은 “불법적이고 용납할 수 없는 것”이라며 “그들은 국제법과 우크라이나의 영토보전, 주권은 물론 러시아가 한 국제적 약속을 위반하고 위기를 더 확대하는 것”이라고 규탄했다.
이번 제재 대상에는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 안톤 바이노 크렘린행정실장(대통령 비서실장), 니콜라이 예브메노프 해군 사령관, 마리아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 러시아 관영 TV ‘러시아 투데이’(RT) 방송 보도본부장 마르가리타 시모니얀 등이 포함됐다.
EU는 우크라이나 돈바스 분리주의 반군 세력의 독립 승인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진 러시아 하원의원 351명도 모두 제재 대상에 넣었다.
외교전도 심화하고 있다. 웬디 셔먼 국무부 부장관은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영국, 폴란드,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등 서방 동맹 카운터파트너와 회담하고 러시아에 대한 단합된 제재를 약속했다.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주유엔 미국대사는 이날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 총회에서 “푸틴 대통령이 국제사회의 시곗바늘을 100년 전으로 돌리려고 하고 있다”며 “국제사회는 러시아 제국의 시대나 소비에트 연방 시절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러시아 침공이 시작되면 최대 500만 명에 달하는 난민이 발생할 것”이라며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했다.
달리프 싱 백악관 국가안보 부보좌관은 CNN에 나와 “러시아에 투입되는 모든 기술을 거부할 수 있는 우리의 수출통제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우린 언제라도 그것을 공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번 제재는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러시아 외무부는 “미국의 제재 패키지는 이미 101번째 대러 제재로 러시아를 포함한 국제 강국들에 대해 그러한 수단은 작동하지 않는다”면서 “제재에는 강력한 대응이 있을 것이란 점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대응을 경고했다.
우크라이나 정부 기관과 금융기관 전산망에 대한 사이버 공격도 이뤄졌다. 이달 중순에 이어 두 번째다. 우크라이나는 배후를 러시아로 지목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