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창홍(67) 작가는 지난해 말 남미 에콰도르 수도 키토의 ‘과야사민 미술관’에서 한·에콰도르 수교 60주년 기념 개인전을 했다. 과야사민 미술관은 ‘라틴아메리카의 피카소’로 불리는 에콰도르 국민화가 오스왈도 과야사민(1919-1999) 재단이 국가와 함께 운영한다. 전시는 과야사민 개인전이 지난해 초 먼저 한국에서 개막한 것에 화답이었다. 안 작가가 양국 문화교류에서 한국 첫 대표 주자로 뽑힌 것은 이인성미술상 등 여러 상을 받는 등 중견 작가로서 무게감이 고려됐다.
그의 귀국 보고 특별전이 서울 은평구 진관동 사비나미술관에서 마련돼 23일 개막했다. 22일 기자와 만난 작가는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전시 의미부터 설명했다. 그는 “작품이 과야사민이 직접 설계한 부속 미술관 ‘인류의 예배당’에까지 걸렸다. 이곳에 외국 작가 작품이 소개된 것은 스페인의 19세기 회화 거장 프란시스코 고야 이후 처음”이라고 말했다. 현지 언론은 전시를 대서특필했고, 문화부 장관과 각국 대사를 비롯한 명사들이 전시를 관람했다. 안 작가는 “문화적 소양이 아주 높았다. 질문 수준이 평론가 수준이라 놀랐다”며 “스마트폰 그리기 앱 기능을 사용한 ‘유령 패션’ 연작에 아주 흥미를 보였다. 문명의 이기를 사용해 문명을 비판하는 것에 굉장히 의미를 부여했다”고 말했다. 디지털 펜화인 유령 패션은 인터넷상에서 패션 화보 이미지를 수집한 뒤 선별한 사진에서 앱 기능을 이용해 얼굴, 손, 발 등을 지우고 터치를 추가한다. 예술적인 리터치 덕분에 작품은 죽어서도 명품 브랜드를 걸치고 싶어 하는 ‘패션 유령’ 같은 기인한 느낌을 준다. 그는 디지털 펜화에 머물지 않고 이를 유화 버전으로, 나아가 입체적인 조각 버전으로 만들었다.
전시장에서는 또 다른 입체 작품인 가면 연작도 볼 수 있다. 빨강 분홍 노랑 등 원색의 대형 가면이 벽면을 따라 전체주의 국가에서 열병식 하듯 걸려 있다. 가면의 무표정함, 원색의 화려함이 엇박자를 내며 로봇 장난감 인간 같은 느낌을 준다. 이마의 작은 열쇠구멍, 진실을 볼 수 없게끔 가려진 눈 때문에 더욱 그렇다. 빅 브라더인 권력과 자본이 조작한 세상만 보게 되는 국민들을 그렇게 시각화한 것이다.
가면과 유령 연작 모두 1980년대 청년 시절에 이미 출현했던 도상들이다. 그는 민중미술의 도화선이 된 1979년의 ‘현실과 발언’ 창립 회원에 참가했을 만큼 사회 참여적인 미술을 해왔다. 특히 자본과 권력이 부추기는 소비지상주의, 권력의 우민화 정책을 이들 연작을 통해 비판하고자 했다. 그는 “이를테면 패션 유령은 78년,79년 회화에 이미 등장한다. 그때는 패션 잡지를 오려 얼굴과 손, 발 등을 없애 유령처럼 만든 뒤 캔버스 등에 붙이는 콜라주 작업을 했다. 이런 콜라주 작업이 기술의 진화와 함께 디지털 펜화로, 입체 조각으로 변주되며 일관되게 이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어떻게 변주됐든 그가 다루는 인물은 자본의 펀치를 당해 피가 뚝뚝 떨어지거나 섬뜩한 유령으로 표현된다. 안 작가는 “그런데 에콰도르 현지 방송이 제 전시를 소개하며 피투성이 격투기 전사 두상을 화면에 내보내 깜짝 놀랐다. 한국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지나치게 대중을 의식하는 한국 언론의 태도에 대한 비판으로 들렸다. 5월 29일 까지.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