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100’ 무역장벽 되나… 반도체·자동차·철강 묶일 수 있다 [스토리텔링경제]

입력 2022-02-27 08:15
RE100 그래픽. 국민일보DB

대선 후보자 토론 이후 ‘RE100’(재생에너지 전력 100% 사용)이 화제로 떠올랐다. 전 세계적으로 동참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각국 정부가 탄소중립 정책에 속도를 붙이면서 RE100으로 뜨거운 정책이 됐다. 특히 RE100이 새로운 무역장벽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동시에 탄소중립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적절한 수단은 아니라는 논란도 따라붙는다.

RE100은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캠페인이다. 국제협약이나 국제적 표준·기준은 아니다. 다국적 비영리그룹 ‘더 클라이밋 그룹’이 영국의 비영리기관 CDP(탄소정보프로젝트)와 합동으로 RE100 캠페인을 운영한다. 2014년 9월 UN기후정상회의가 열린 뉴욕 기후주간에서 공식 도입됐다. 이니셔티브 참여기업은 온실가스 배출량 관리, 기업의 사회적 책임, 재생에너지의 경제성, 주주 및 고객사 요청 등 다양한 이유로 RE100에 참여하고 있었다.

막강한 힘 발휘하는 RE100

그런데 왜 막강한 힘을 발휘할까. 투자자, 고객사, 비정부기구(NGO) 등의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기업에 지속적으로 재생에너지 사용 확대를 요구하는 게 가장 큰 이유다. BMW, 폭스바겐, 볼보 등 전기차 생산 기업들은 전기차 제조공정의 재생에너지 확대 계획을 수립하면서 전기차 배터리 등 관련 협력사에 재생에너지 사용 확대를 요청하고 있다. 그린피스는 삼성전자를 대상으로 RE100 참여, 재생에너지 정책 수립·공개를 촉구하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이렇게 시민사회와 금융권 등에서 RE100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기업들이 압박을 받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RE100에 가입한 기업은 구글, 애플, 제너럴모터스(GM) 등 349개에 이른다. 한국 기업은 2020년 처음으로 RE100 가입을 선언한 SK그룹 계열사와 LG에너지솔루션, 고려아연 등 14곳 정도다. RE100에 가입하려면 주요 다국적기업(포춘지 선정 1000대 기업 또는 동급) 중에서 영향력 있으면서 재생에너지 사용 의지를 보이고 구체적 계획을 수립하는 등의 일정 요건을 갖춰야 한다.

한국 기업의 가입이 저조하자 ‘한국형 RE100(K-RE100)’도 만들어졌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부터 전기소비자가 재생에너지 전기를 선택적으로 구매해 사용할 수 있는 한국형 RE100 제도를 본격 도입했다. 한국형 RE100 제도는 녹색 프리미엄,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 시장, 제3자 전력구매제(PPA), 자산취득, 자가 발전 등으로 구성된다.

새로운 무역장벽으로 등장하나

RE100 흐름이 거세지면서 새로운 무역장벽으로 등장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의 주력 수출품은 탄소배출 및 전력사용량이 많은 철강, 자동차, 반도체, 화학 등이다.

KDI공공정책대학원, 에너지경제연구원이 지난해 9월 발표한 ‘RE100이 한국의 주요 수출산업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RE100에 한국 기업이 참여하지 않을 경우 자동차, 반도체, 디스플레이 산업의 수출액이 각각 15%, 31%, 40% 감소할 것으로 예측됐다.


그러나, 전문가들 사이에서 RE100 효용성을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다. RE100을 인정받기 위해 자체적으로 태양광, 풍력 등의 에너지를 설치해서 자가전력을 100% 채우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다국적 기업들은 재생전력인증서(REC) 구매, 녹색전력요금제 이용, 전력구매계약(PPA) 체결 등으로 재생에너지를 조달하고 있다.

환경부와 한국환경산업기술원에 따르면 RE100 참여기업은 2017년 기준으로 총 소비 재생에너지의 46%를 재생에너지인증서 구매, 35%를 녹색전력요금제 등으로 충당하고 있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만을 100% 쓴다면 태양광 에너지를 쓸 수 없는 야간에는 화력발전 에너지를 초과구매해서 쓸 수밖에 없을 것”이라면서 “겉으로 보기에는 100% 재생에너지를 쓰는 것 같지만 실제로 뚜껑을 열어보면 탄소가 발생하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대안으로 떠오르는 CF100

잡음이 일자 대안으로 CF100(Carbon Free 100%)이 떠오르고 있다. ‘탄소배출 제로’의 줄임말인 CF100은 사용 전력의 전부를 무탄소 에너지로 공급한다는 개념이다. ‘무탄소 에너지원’에는 풍력, 태양광, 수력 외에 원자력 발전도 포함된다. CF100은 아직 공식 캠페인으로 자리를 잡지 못했다.


CF100은 2018년 구글에서 선언하면서 부각됐다. 구글은 ‘24×7 탄소배출 제로(Carbon Free)’를 기업의 핵심 에너지 정책으로 삼았다. 24시간, 일주일(7일) 내내 무탄소 에너지를 이용해 데이터 센터를 운영한다는 것이다.

CF100이 더 적절하다는 평가도 있다. 정 교수는 “글로벌 산업계도 RE100에서 CF100으로 나아가는 추세다. 탄소중립으로 나아가는 길이 재생에너지 만의 전유물은 아니다”면서 “RE100이 궁극적으로는 탄소배출을 줄이는 데 목표를 두고 있기 때문에 원자력에너지를 추가하는 등 실질적으로 탄소 중립을 이행하려면 구성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김지애 기자 am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