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연 대법관은 23일 “(대장동 연루 의혹이) 지난해 10월과 달리 계속 증폭이 되고 있다”는 말로 현직 대법관의 기자회견 자청 이유를 설명했다. 그가 말하는 증폭의 진앙은 ‘정영학 녹취록’ 관련 언론 보도와 특정 대선 후보의 공개 발언이었다. 그는 녹취록의 ‘그분’이 현직 대법관이라는 내용의 신문 기사를 펼쳐 들었고, 지난 21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TV토론에서 자신의 실명을 언급한 것을 적어와 읽었다.
조 대법관이 대장동 핵심들의 대화에 등장한다는 의혹은 지난해 10월 정치권에서 이미 제기됐다. 당시에는 신빙성 문제로 보도가 이뤄지진 않았다. 조 대법관은 당시 언론에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씨 등을 알지 못하며, 자녀 아파트 문제 등도 사실무근임을 밝혔었다. 검찰도 나름의 사실 확인 작업에 나섰지만 조 대법관을 상대로 수사 진척은 없었다.
하지만 대선이 코앞에 닥치면서 김씨 등이 거론한 천화동인 1호 실소유주 ‘그분’이 조 대법관을 지칭한다며 실명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전언 성격이었다.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는 지난 19일 “대법관이 대장동 개발 비리의 뒤에 숨은 주인이라니 경악스럽다. 사건의 전모가 밝혀져야 한다”고 했다. “조재연 대법관은 ‘대장동 그분’ 논란이 제기된 분”이라고 소셜미디어에 쓴 현직 검사도 있었다.
정영학 녹취록은 거듭 신빙성을 의심받아 왔다. 발언 당사자인 김씨는 술자리 대화 따위가 과장되게 채록됐다고 했고, 여기서 ‘50억 클럽’으로 거론된 이들 다수는 민형사상 대응 계획을 밝혔다. 조 대법관 의혹의 경우 녹취록에 과연 그의 실명 세 글자가 있는 것인지도 아직 불분명하다. 실제 기록에는 김씨 등이 ‘그분’ ‘저분’으로 지칭한 낱말 위에 가필로 조 대법관의 이름이 적힌 것으로 전해졌다. 조 대법관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일각이 사실이 아닌데 흘리고, 그것이 의혹 형식으로 보도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며 아쉬워했다.
녹취록은 맥락과 무관하게 부분적으로 발췌돼 양당의 정쟁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예민한 시기일수록 검찰 수사가 보다 신속했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검찰은 조 대법관 관련 의혹에 대해 “아직 결론이 나지는 않았다”는 입장이다. 조 대법관은 “대장동 사건은 검찰이 고발을 받은 지가 반년 가까이 된다”며 “검찰이 보실 때에 필요하다면 즉시 저를 불러 주기 바란다”고 공개적으로 요청했다. 그는 “논란을 종식시키는 데 검찰도 제 역할을 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경원 조민아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