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에서 재차 패소했다. 그간 손해배상 청구권의 ‘소멸시효’ 완성 시점을 두고 하급심 판결이 엇갈렸는데, 최근에는 피해자 측이 패소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96단독 이백규 판사는 23일 김한수(104)씨가 미쓰비씨중공업을, 또 다른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유족이 쿠마가이구미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각각 기각했다. 이 판사는 법정에서 판결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는 않았다.
다만 관련 소송에서 법원이 강제징용 피해자의 청구를 기각해온 주된 사유는 ‘소멸시효’가 완성돼 더 이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민법상 불법행위에 의한 손해배상 청구권은 가해자가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이 지나거나, 피해자가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이내에 행사하지 않으면 소멸된다.
그간 소멸시효의 기산점을 두고 하급심 판단은 엇갈렸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에 대한 대법원의 첫 판단은 2012년 5월에 나왔다. 당시 대법원은 “강제징용 피해자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소멸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후 파기환송심과 재상고심을 거쳐 2018년 10월 최종 확정됐다.
이를 두고 소멸시효 기산점을 파기 환송된 2012년으로 볼지 판결이 확정된 2018년으로 볼지 판단이 갈린다. 소멸시효 기산점을 2012년으로 보면 2019년에 소송을 제기한 김씨의 경우에는 손해배상 청구권이 없다. 반면 광주고법은 2018년 12월 미쓰비시중공업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의 항소심에서 “대법원이 2018년 10월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청구권협정에 관한 해석을 명확히 밝혔다”며 2018년을 소멸시효 기산점으로 판단했다.
하급심이 2012년 대법원 판례를 기준으로 판단을 내리는 추세지만 대법원이 소멸시효 기산점에 대한 판단을 최종적으로 내려줘야 논란이 수그러들 전망이다. 이날 선고 직후 김씨 측은 “2018년 대법원 판결이 있기 전까지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들을 상대로 위자료 청구를 할 수 있는지 여부가 법적으로 정리가 안 되어 있었다”며 “오늘 판결이 많이 아쉽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성영 기자 ps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