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 군 투입을 지시하자 마자 이 지역에선 러시아군으로 보이는 군용 차량 행렬이 속속 목격되고 있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당시 선봉에 섰던 의문의 부대 ‘리틀 그린 맨’(little green men)이 이미 국경을 넘어 해당 지역에 진입한 것으로 파악된다.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22일 새벽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 주도인 도네츠크 인근에서 탱크, 장갑차 등을 포함한 군용 차량 대열이 1.6㎞ 가량 줄지어 늘어선 장면이 목격됐다.
우크라이나 측이 공개한 영상에도 군용 차량 행렬이 도로를 따라 이동하는 모습이 담겼다. 해당 차량에는 번호판이 없었고 주변 군인들은 이름과 계급을 포함한 모든 휘장이 제거된 상태였다. 이들 중 일부는 어깨에 흰색 리본을 두르고 있었는데 로이터는 이들이 리틀 그린 맨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NYT) 역시 전날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불과 100㎞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리틀 그린 맨으로 보이는 의문의 부대가 고속도로를 따라 주둔하고 있는 게 목격됐다고 보도했다. NYT는 이들에게 소속 등을 나타내는 표시가 없다는 점에서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합병하기 위해 침공했을 때 활동했던 리틀 그린 맨과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당시 러시아는 이들의 존재를 부인했으나, 이후 러시아군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푸틴 대통령도 뒤늦게 이를 인정했다. 이번 사태에도 리틀 그린 맨이 가장 먼저 국경을 넘은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서방 국가는 러시아가 국제법과 우크라이나의 주권을 무시했다며 맹비난했다. 린다 토머스 그린필드 유엔 주재 미국대사는 우크라이나 사태를 둘러싸고 긴급히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푸틴 대통령은 평화유지군이라고 불렀지만 이는 헛소리”라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추가 침공 구실을 만들려는 러시아의 시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리즈 트러스 영국 외무장관, 샤를 미셸 유럽연합(EU) 상임의장,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EU 집행위원장 등도 비난 대열에 가세했다.
이에 대해 바실리 네벤자 유엔 주재 러시아 대사는 서방의 비판을 반박하며 “우린 외교적 해법에 대해 열린 입장이다. 돈바스에서 새로운 피바다를 허용하는 건 우리가 의도하는 바가 아니다”고 반박했다. 오히려 그는 “우크라이나군이 포격을 멈춰야 한다”며 “서방이 우크라이나 사태를 악화시키지 말고 우크라이나가 군국주의적 계획을 버리게 해야 한다”고 책임을 떠넘겼다.
한편 러시아 국영 리아 노보스티 통신은 러시아가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과 루간스크인민공화국(LPR)의 독립을 인정하자 해당 지역 주민들은 러시아를 연호하며 기뻐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국기를 흔드는 주민들의 모습 등 주변의 전쟁 고조 분위기와는 상반된 축제 분위기를 전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