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당시 북한 공산당이 종교 탄압과 집단 학살을 자행했다는 국가기관의 공식 연구 결과가 나왔다. 1950년 유엔군의 인천 상륙 당시 전세가 불리해진 북한이 각 지역에 “반동세력을 제거하고 퇴각할 것”을 명령했고, 이후 종교인들을 다수 포함한 전국적인 학살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진실과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6·25 전쟁 전후 기독교 탄압과 학살 연구’ 용역 보고서를 22일 발간했다. 보고서는 한국전쟁 기간 기독교인 1026명, 천주교인 119명이 북한에 의해 희생됐다고 집계했다.
연구를 맡은 서울신학대 박명수 교수팀은 문헌 자료 등을 토대로 교인들의 피해 정황을 찾아낸 뒤 해당 교회를 방문해 생존자들로부터 관련 증언을 확보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충남 논산의 병촌교회에서는 1950년 9월 27일과 28일 사이 교회 신자 66명이 북한군에 의해 집단 학살됐다. 사형 판결을 받고 극적으로 도망친 생존자는 당시 상황에 대해 “공산당원들이 ‘예수를 믿으면 다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삽과 몽둥이, 죽창 등으로 구타하고 구덩이에 파묻었다. 젖먹이를 가슴에 안고 죽은 임산부도 있었다”고 진술했다.
좌우 갈등이 심했던 전북 군산 지역의 여러 교회에서도 피해가 컸다. 원당교회 신자 14명과 해성교회 신자 7명은 방공호에서 살해됐다. 당시 상황을 목격했던 피해자의 손자는 “‘지금이라도 예수를 모른다고 말하면 살려주겠다’고 협박받았다. 이를 거절한 교인들 일부는 방공호에 매장됐다”고 진술했다.
이런 피해에도 불구하고 교인들은 가해자를 용서하고 복수하지 않는 기독교 정신을 보여줬다고 보고서는 기술했다. 66명이 희생된 병촌교회는 가해자들을 용서했고, 22명이 희생된 전북 정읍 두암교회는 가해자를 기독교 신자로 만들어 같이 신앙생활을 했다고 한다.
연구팀은 “한국전쟁 시기의 기독교인에 대한 숙청은 북한 당국의 공식적인 지시사항”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기독교인들은 각종 우익단체에서 활동했고, 공산주의자들은 기독교를 적대 세력으로 간주해 탄압했다”고 분석했다.
김판 기자 p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