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연기관차의 전동화 전환이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주요 국가에서 자국 기업에 유리한 보조금 정책 카드를 꺼내들고 있다. 전기차 보조금은 겉으론 친환경차를 빠르게 보급해 탄소중립 실현 시기를 앞당긴다는 좋은 취지를 내세운다. 이면에는 팽창하는 전기차 시장의 패권을 잡겠다는 ‘손익계산’이 깔려 있다.
21일 한국자동차연구원(한자연)에 따르면 중국은 배터리 서비스(BaaS·Battery as a Service)를 탑재한 전기차에 보조금 가격 상한(30만 위안) 기준을 적용하지 않는다. BaaS는 생산·판매·수리·대여·재사용·재활용 등의 배터리 생애주기 전반을 관리하는 서비스다. 중국 정부가 적극 장려하는 사업이다. 리오토(Li Auto) 등의 중국 전기차 업체가 생산하는 주행거리연장형전기차(EREV)는 보조금 지급 대상에 포함했다. EREV는 기본적으로 전기차지만 내연기관을 활용해 주행가능거리를 늘렸기 때문에 보조금을 주지 않는 나라가 많다.
중국 정부는 테슬라 전기차 모델3가 인기를 끌자 이를 억제하기 위해 2020년 가격 30만 위안(약 5680만원)을 넘는 전기차를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했었다. 이 조치 이후에 테슬라가 모델3 가격을 30만 위안 아래로 내리면서 효과를 보진 못했다.
일본은 외부에 전력 공급기능을 갖춘 전기차에 추가 보조금을 준다. 일본 완성차 업체가 생산한 전기차나 하이브리드 차량에는 대부분 외부전력 공급기능이 장착돼 있다. 이런 기능이 없는 외국 전기차에 비해 대당 보조금 상한액이 20만엔(약 207만원) 정도 높다.
독일은 지난해 내연기관이 탑재돼 있는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 차량에 최대 6750유로(약 920만원)의 보조금을 지급했다. 다른 유럽 국가보다 높은 액수다. 메르세데스 벤츠, BMW, 폭스바겐 등 자국 완성차 업체의 내연기관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걸 고려한 것이다.
이탈리아는 피아트의 전기차 ‘뉴 500 일렉트릭’ 판매가 본격화된 지난해 전기차 1대당 2000유로(약 270만원)의 특별 보조금을 추가했다. 이탈리아와 프랑스는 전기차 보조금 지급 가격 상한선을 상대적으로 낮게 책정했다. 지난해 프랑스는 4만5000유로 이하 전기차에 대해 보조금으로 최대 7000유로를 지급한 반면 이보다 비싼 차량엔 2000유로만 보조금을 줬다. 자국의 완성차 기업이 비교적 저렴한 소형 전기차 생산에 집중하고 있다는 걸 감안한 정책이다.
이호중 한자연 책임연구원은 “전기차는 배터리·자율주행 등 혁신 기술과도 연결돼 있어 각국이 치열한 선점 경쟁을 벌이고 있다. 전기차 시장에서 자국 기업이 밀리면 관련 산업이 줄줄이 타격을 받게 되는 것”이라며 “국내에서도 전기차 관련 기업의 기술 혁신을 촉진하는 보조금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