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연일 10만명을 웃도는 상황에서 정부의 거듭된 방역 수칙 완화 움직임이 시민 방역 긴장감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진단·치료와 동선관리까지 자율 책임에 상당부분 맡긴 상황에서 심리적 방역 둑이 무너지면 감염병 확산세가 더욱 가팔라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서울 관악구의 한 약사는 지난 17일 처방전을 전산에 입력하다 화들짝 놀랐다. 평소 얼굴을 알던 이가 약을 사러 왔는데 그의 이름으로 ‘코로나19 양성’이라는 안내가 떴기 때문이다. 통상 비대면 진료 후 동거가족이 약을 찾아오거나 배송 받지만 대면 진료를 원할 때는 지자체에서 ‘마스크를 쓰고 빠르게 다녀오라’고 안내하기도 한다. 해당 약사는 20일 “다른 환자들도 대기 중이었는데 ‘빨리 돌아가라’고 안내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오미크론 맞춤형’ 의료체계로 전환되면서 재택치료 일반관리군의 방역은 사실상 정부 통제를 벗어났다. 동선을 관리하는 자가격리 애플리케이션을 없앴고 역학조사 역시 확진자 개인이 직접 하도록 했다. 개개인의 방역 긴장감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심리적 방역 둑 붕괴 조짐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지난 15일 인천 동구에서 70대 확진자가 재택치료 중 찜질방에 갔다가 숨졌다. 재택치료 중 주거지를 벗어나 다중이용시설을 찾았지만 막을 장치는 없었다. 경기도 성남에 사는 이모(31)씨는 “최근 확진 판정을 받은 동네 주민을 상가 마트에서 봤다”며 “방역 수칙을 어기도록 정부가 제대로 관리하지 않는 게 화가 난다”고 말했다.
‘검사가 정확지 않을 수 있다’며 가볍게 넘기는 경우도 있다. 지난 14일 수도권의 한 금융회사에서는 사무실 직원 7명 전원이 코로나19에 감염됐다. 전날 이상증세를 느낀 한 직원은 자가진단키트 검사를 실시한 후 양성이 나오자 동네의원에서 신속항원검사를 실시해 음성 판정을 받았다. 키트에서 양성 반응이 나오면 유전자증폭(PCR) 검사를 받아야 하지만 해당 직원은 PCR 검사 없이 출근해 함께 식사하는 바람에 무더기로 확진됐다.
밀접접촉자 분류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서울 강남구에서 회사에 다니는 정모(34)씨는 옆 자리서 커피를 함께 마셨던 팀장이 확진됐다는 소식을 동료로부터 들었다. 회사에선 별도 공지도 없었다. 정씨는 “이전에는 사내 청소 노동자 확진 사실까지 회사 전체 문자로 알려왔는데 지금은 가볍게 여기는 것 같다”고 걱정했다.
실제 유명순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팀이 경기도민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코로나19 감염 심각성’에 ‘크다’라고 답한 응답자는 절반이 조금 넘는 51.2%에 그쳤다. 2020년 관련 조사 시작 이래 최저다.
최재욱 고려대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확산세가 정점을 찍지도 않았는데 정부가 너무 빨리 통제에서 손을 놓아버린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며 “심리적 방역이 무너지면 관리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