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사진 대가’ 사울 레이터 사진집들… “세상은 무한한 기쁨의 근원”

입력 2022-02-20 15:07 수정 2022-02-20 15:18

한 사진 전시회가 조용히 입소문을 타고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미국의 사진가 사울 레이터(Saul Leiter·1923-2013)의 전시회인 ‘사울 레이터: 창문을 통해 어렴풋이’가 그것이다. 서울 중구 남산 아래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피크닉(piknic)’에서 지난해 12월 시작된 이 전시회는 2개월 넘게 이어지고 있지만 표를 구하기 어려울 정도다.

사울 레이터는 1940년대 이후 미국 뉴욕을 배경으로 60년간 사진 작업을 해왔다. 그가 사진계의 주목을 받은 것은 2000년대 이후다. 독일의 사진 전문 출판사 슈타이들이 2006년 출간한 사울 레이터의 첫 사진집 ‘얼리 컬러(Early Color)’는 그를 20세기 가장 중요한 사진가 중 한 명으로 올려놓았다.

사울 레이터 바람은 미국에서 유럽을 거쳐 아시아에 상륙했다. 2017년 ‘사진가 사울 레이터: 회고전’이 도쿄를 시작으로 일본의 여러 도시를 순회했다. 2020년 1월 두 번째 대규모 순회전인 ‘영원히 사울 레이터’가 시작됐다. 한국에서는 피크닉 전시가 처음이다.

'사울 레이터'(열화당) 뒷표지. 사진 제목 '산카를로 식당'(1952년).

전시회에 맞춰 사울 레이터 사진집도 두 권 출간됐다. 출판사 열화당은 사울 레이터 재단과 협력해 사진을 선별하고 작가론을 받아 수록한 ‘사울 레이터’를 선보였고, 윌북은 2020년 일본에서 열린 사울 레이터 순회전 작품집 ‘영원히 사울 레이터’를 냈다.

‘사울 레이터’는 뉴욕의 거리 풍경을 담은 흑백 사진과 컬러 사진들, 패션 화보 사진, 누드와 초상 작업 등 81점의 사진을 보여준다. ‘영원히 사울 레이터’는 거리 사진과 함께 자화상, 최초의 모델이었던 여동생 데보라 레이터, 패션모델이자 평생의 연인이었던 솜스 밴트리 사진이 수록됐다.

사울 레이터는 거리 사진의 대가로 불린다. 1946년 집을 떠나 뉴욕에 도착한 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스트빌리지 10번가 아파트에 살았다. 거리 사진들은 대부분 그 동네를 산책하며 찍은 것들이다.

그는 거리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즉흥성을 사랑했다. 그의 사진은 독특한 각도, 흐릿한 초점, 뭘 찍은 건지 알 수 없는 모호함 등으로 유명하다. 그는 과정을 통제하기보다 상황이 자연스럽게 전개되도록 방치해 놓고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다가 순간을 포착해서 셔터를 눌렀다. 비에 젖은 창문, 눈 덮인 풍경, 사람과 분리되어 춤추는 듯한 우산 등이 그가 반복적으로 활용한 모티브들이다.

사울 레이터는 “나는 사진의 모호함을 좋아합니다. 자신이 뭘 보고 있는 건지 확신하지 못하는 그런 사진이 좋습니다”라고 했고, 또 “뿌옇거나 흐릿함 속으로 녹아든 사물들, 유리창 너머로 찍은 사진들을 좋아합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렌즈에는 주로 일상적인 거리와 평범한 사람들이 담겼지만, 신기한 우연과 놀라운 해프닝들이 가득했다. “거리는 발레와도 같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결코 예상할 수 없다” “나는 이 세상을 단순하게 바라본다. 세상은 무한한 기쁨의 근원이다” 같은 말도 거리 사진에 대한 그의 관점을 잘 보여준다.

'영원히 사울레이터'(윌북) 표지. 사진 제목 '모자'(1960년).

사울 레이터는 컬러 사진의 선구자이기도 한다. 1970년대에 컬러 사진을 찍었던 다른 사진가들보다 앞서 1940년대부터 ‘순수하게 예술적인 목적으로’ 컬러 필름을 사용했다. 사울 레이터의 사진집 ‘얼리 컬러’의 출간은 컬러 사진에 대한 관점을 바꿔 놓았다. 컬러 사진은 그가 활동했던 기간 내내 예술 사진으로서 인정받지 못했다. 컬러 사진을 자신의 컬렉션에 추가한다는 생각이 수집가들에겐 없었다. 그는 2002년 뉴욕 유대인 박물관 강연에서 “컬러를 경시하는 태도를 나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라며 흑백 사진을 더 높이 평가하는 관행을 비판했다. 색은 우리 삶의 중요한 요소이며, 사진에서도 고귀한 위상을 지닙니다.”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고 SNS에서 전시하는 게 일상이 된 현대인들에게 사울 레이터는 생활과 주변을 예술적으로 감각하는 눈과 사진을 찍는 행위의 순수한 즐거움을 알려준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사진에 공감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는 “사진은 내게 바라본다는 것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해주었다”고 말했다. 또 “내 작업에 대해 설명하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내가 그 사진들을 찍은 건 내 눈에 비친 풍경들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니까요”라고 설명했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