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오미크론 확산과 서방 국가들의 외교적 보이콧 속에 시작된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20일 막을 내린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3연임을 확정할 공산당 20차 당대회를 앞두고 열린 베이징 올림픽은 기대만큼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도핑 파문과 편파 판정 논란, 방역을 앞세운 과도한 통제로 각국 선수들의 반발을 샀다. 평화의 축전이어야 할 대회 기간 국제사회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위기로 전쟁 분위기에 휩싸였다.
“역사는 이 봄을 기억할 것” vs. “최악의 스캔들 올림픽”
중국 관영 매체는 올림픽 성공 개최를 자축했다. 신화통신은 “베이징 올림픽은 모든 사람이 한마음으로 단결해 힘차게 나아가는 중국을 세계에 새롭게 각인시켰다”며 “역사는 잊지 못할 이 봄을 기억할 것이고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은 반드시 실현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시 주석이 개막식 참석차 중국을 방문한 외국 정상들과 대면 외교를 재개한 사실을 언급하며 “중국이 대세”라거나 “세계가 시 주석의 글로벌 개발 이니셔티브에 적극 호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중국 지도부에 베이징 올림픽은 올림픽 이상의 의미가 있는 초대형 이벤트였다. 중국 공산당은 지난해 11월 중앙위원회 연례 전체회의(19기 6중 전회)에서 시 주석의 장기 집권을 위한 사전 정비 작업을 끝냈다. 올해 가을 당대회 전까지 베이징 올림픽을 시작으로 최대 정치 행사인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청두 유니버시아드 등 굵직한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러 시 주석의 리더십을 띄우는 일이 남았다. 중국 내부적으로는 이러한 목표를 어느정도 달성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해외 평가는 다르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19일(현지시간) “베이징 올림픽의 최종 이미지는 처참한 프리스케이팅 후 눈물을 흘리는 발리예바가 될 것”이라며 ‘스캔들 올림픽’이라고 혹평했다. 도핑 양성 판정에도 스포츠중재재판소(CAS) 허가를 받고 경기에 나섰던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카밀라 발리예바(러시아올림픽위원회)가 연이은 실수 탓에 스스로 무너진 상황을 올림픽 결과에 빗댄 것이다.
베이징 올림픽에 대한 우호적인 여론 조성을 위해 수천 개의 가짜 SNS 계정이 동원됐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뉴욕타임스(NYT)는 탐사 전문매체 프로퍼블리카와 함께 분석한 결과 베이징 올림픽 관련 긍정적 보도를 퍼뜨리는 트위터 계정 중 3000개 이상이 가짜 계정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이들 계정에는 자체 작성한 글이 없고 중국 관영 매체 보도를 퍼나르기만 했다는 것이다. 트위터 측은 여론 조작에 동원된 계정을 단속하겠다고 밝혔다.
중국식 폐쇄루프의 효율성과 1만8000명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은 평가할 만하다. 올림픽 선수촌 입소가 시작된 지난달 23일 이후 입국자 공항 검사와 폐쇄루프에서 나온 누적 확진자는 각각 264명, 171명이다. 대회 기간 경기장과 숙소, 미디어센터 등 외부와 차단된 폐쇄루프 안에서 1만6000명 넘는 인원이 생활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코로나19 확산을 막는 데는 성과가 있었다.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베이징 올림픽 조정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171명의 양성 사례는 모두 공항에서 확진자를 밀접 접촉한 것으로 추적돼 결과적으로 폐쇄루프에서의 전파는 없었다”고 말했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올림픽 성공 개최에 기여한 공로로 중국 국민에게 올림픽컵을 전달했다. 다만 올림픽 초반 선수들 사이에선 열악한 격리 시설과 미숙한 경기 운영, 과도한 방역 조치에 대한 불만이 제기됐다.
2008년 이어 2020년에도 ‘러시아발 위기’ 돌출
무엇보다 축제 분위기를 반감시킨 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위기였다. 친러시아 반군이 장악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선 정부군과 반군 간 교전이 격화돼 언제 전면전으로 치달을지 모르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베이징 올림픽과 러시아는 남다른 악연이 있다. 러시아는 2008년 8월 베이징 하계올림픽 개막식 날 그루지야(조지아)를 침공했다. 이번에는 우크라이나 사태가 올림픽 흥행에 찬물을 끼얹었다. 베이징은 하계·동계 올림픽을 모두 개최한 세계 첫 도시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는데 두 번 모두 러시아발 이슈로 국제사회 관심이 분산되는 일을 겪은 셈이다.
중국은 그간 러시아의 침공이 임박했다는 미국 정부 주장을 일축하며 러시아를 두둔해왔다. 그러나 올림픽 폐막에 즈음해선 입장 변화가 감지됐다.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19일(현지시간) 뮌헨 안보회의에 영상으로 참석해 “각국의 주권, 독립, 영토 완전성은 국제 관계의 기본 준칙으로 존중받아야 한다”며 “우크라이나에 대해서도 예외가 아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력 행동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다.
편파 판정 논란에 반중 감정 격화
한국에선 올림픽 개막식에 등장한 한복과 쇼트트랙 판정 논란으로 반중 감정이 격화됐다. 중국의 역사·문화 공정과 사드 보복에 대한 반감이 누적된 상황에서 대선 국면에 접어든 정치권이 가세해 폭발했다. 시 주석 시대 애국주의 바람이 거센 중국에서도 반한 감정이 점점 커지고 있다. 한·중 수교 30주년인 올해 민간 부문에서의 갈등이 언제든 불거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