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예바 몰아세운 코치, 그를 두둔한 크렘린궁

입력 2022-02-20 11:38 수정 2022-02-20 12:46
러시아올림픽위원회(ROC) 피겨스케이팅 선수단을 지휘하는 예테리 투트베리제(오른쪽) 코치가 지난 17일 중국 베이징 캐피털 실내경기장에서 열린 동계올림픽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 경기를 마치고 자신에게 돌아온 카밀라 발리예바(가운데)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러시아 대통령궁인 크렘린궁이 베이징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에서 도핑 논란에 흔들려 메달을 놓친 카밀라 발리예바(16)를 질책한 예테리 투트베리제(48) 코치를 옹호했다.

미국 일간 뉴욕포스트는 19일(현지시간) “엘리트 스포츠에서 코치의 강인함이 승리의 열쇠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다”는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의 지난 18일 기자회견 발언을 보도했다. 투트베리제 코치는 2015년 국가 주도의 도핑 스캔들로 국가대표 선수단을 구성할 수 없는 러시아에서 자국 올림픽위원회(ROC) 피겨스케이팅 선수단을 지휘하고 있다. 페스코프 대변인의 발언에서 세계 피겨 팬들의 정서와 반대로 투트베리제 코치를 지지하는 러시아 여론의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투트베리제 코치는 지난 17일 중국 베이징 캐피털 실내경기장에서 끝난 베이징 동계올림픽 피겨 여자 싱글에서 실수를 연발하고 경기를 마친 발리예바를 강하게 몰아세웠다. 눈물을 쏟으며 자신에게 돌아온 발리예바에게 “왜 포기했는가. 왜 경쟁하지 않았는가”라고 꾸짖는 투트베리제 코치의 모습이 중계방송 화면에 노출됐다.

발리예바는 지난해 12월 러시아선수권대회에서 채집된 도핑 샘플에서 금지약물 성분인 트리메타지딘 양성 반응을 나타내고도 스포츠중재재판소(CAS)의 긴급 청문회에서 출전 승인을 얻어 올림픽 무대에 올랐다. 트리메타지딘은 협심증 치료에 사용되는 약물로, 흥분 효과를 일으켜 세계반도핑기구(WADA)에서 금지약물로 지정된 물질이다.

이에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발리예바의 입상 시 시상식 취소’라는 이례적인 조치를 예고하며 CAS의 결정에 항의했다. 발리예바는 지난 15일 쇼트프로그램을 1위로 마쳤지만 세계적인 비판 여론과 IOC의 결정에 압박을 느낀 듯 프리스케이팅에서 4위에 머물렀다. 당초 가장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 지목됐지만, 시상대 바로 밑으로 밀렸다.

발리예바는 경기를 마치고 복잡한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눈물을 쏟았다. 하지만 경기장을 빠져나온 발리예바에게 투트베리제 코치는 위로하지 않고 질책했다. 이에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이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결산하면서 “발리예바가 느꼈을 부담감을 보고 괴로웠다. 주변인(투트베리제 코치)에게 받은 대우를 보고선 섬뜩함마저 느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올림픽위원회(ROC)의 카밀라 발리예바가 지난 17일 중국 베이징 캐피털 실내경기장에서 열린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미끄러져 넘어지고 있다. AFP연합뉴스

러시아올림픽위원회(ROC)의 카밀라 발리예바가 지난 17일 중국 베이징 캐피털 실내경기장에서 열린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 경기를 마치고 눈물을 쏟고 있다. AP연합뉴스

페스코프 대변인은 “바흐 위원장이 세계 스포츠계에서 매우 권위 있는 인물이고, 우리는 그의 의견을 존중한다. 하지만 그의 말에 동의할 필요는 없다”며 “우리 선수들이 승리를 달성하는 순간을 목격했다. 그러니 자랑스럽게 생각하겠다. 메달리스트에게 축하를 전한다. 발리예바는 4위였지만 엘리트 스포츠에서 강력한 승리였다”고 자평했다.

발리예바의 도핑 규정 위반은 다른 국가 선수들에게도 피해를 입혔다. 발리예바가 러시아올림픽위원회(ROC)의 일원으로 출전해 금메달을 합작한 피겨 팀이벤트에서 미국은 2위, 일본은 3위에 올랐다.

하지만 발리예바의 도핑 규정 의혹이 해결될 때까지 지난 8일로 예정됐던 시상식은 결국 동계올림픽 폐막 시점까지 열리지 않고 무기한 연기됐다. 이로 인해 미국, 일본 선수단도 메달을 손에 넣지 못하고 조국으로 돌아가게 됐다.

AP통신은 20일 “미국 대표팀이 요청한 피겨 팀이벤트 시상식을 CAS가 기각했다”며 “피겨 단체전 2위에 오른 미국 선수 9명은 은메달을 목에 걸지 못하고 귀국한다”고 보도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