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혼인 건수와 출산율이 급격히 줄면서 이미 총인구는 감소하기 시작했다. 여야 주자들도 저출산 관련 정책을 주요 공약으로 들고 나왔지만 대부분 현 정부가 하고 있는 재정 지출을 더 늘리겠다는 데 그친다. 청년들에게 ‘애 낳고도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청사진보다 ‘애 낳으면 나라에서 돈을 더 주겠다’는 식의 임기응변식 정책만 내놓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20일 통계청에 따르면 총인구는 지난해부터 줄어들기 시작했다. 기존 전망보다 8년 앞당겨진 것이다. 코로나19로 혼인 건수가 매 분기 줄고 있고, 국가 간 이동 제한으로 인구 유입이 줄어든 탓이다. 줄어든 혼인 건수는 앞으로의 출산율을 더 빠르게 떨어뜨릴 전망이다. 2020년 기준 0.84명인 합계출산율은 2024년 0.70명으로 내려앉고, 최악의 시나리오(저위 추계)로는 2025년 0.61명으로까지 떨어진다.
정부는 2021~2025년 9조5000억원을 투입하는 ‘저출산 극복 5대 패키지 과제’를 설정해 실행 중이다. 부부 공동 육아휴직제, 육아휴직 지원금(중소기업 최대 월 200만원), 0~1세 영아수당 월 30만원 지급, 첫 만남 이용권 200만원 지급 등이다. 이에 더해 정부는 결혼이나 출산을 고민 중인 청년층을 위한 세금·금융 제도 개선, 육아·돌봄 지원 확대 등을 논의하기 위해 제4기 인구정책TF를 출범한 상태다.
현 정책과 별 차이 없는 저출산 공약
양당 주자의 저출산 관련 공약을 보면 지금 시행 중인 정책과 큰 차이가 없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돌봄 지원 강화를 들고 나왔다. 아동이나 영·유아 돌봄을 국가가 책임지게 하고, 육아휴직 급여액을 늘리는 방법으로 맘 놓고 애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또 육아에 대한 부부의 공동 책임을 강조하며 남성의 육아휴직을 일정 기간 강제하는 ‘부모 쿼터제’와 아이가 출산하면 자동으로 육아휴직을 등록되는 ‘자동등록시스템’을 공약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출산 후 1년 동안 부모 급여 월 100만원 지급, 육아휴직 기간 확대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부모가 각각 1년 6개월씩 총 3년의 육아휴직을 쓸 수 있게 하겠다고 공언했다. 공약집에서 윤 후보는 “양육 부담 문제로 출산 기피 현상이 만연”한다며 “모든 임신·출산(희망) 가정과 영유아가 있는 가정에 대한 적절한 서비스(검진, 치료, 건강관리, 양육서비스) 이용 보장과 경제적 지원 제공으로 출생률 회복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저출산 관련 예산은 매년 조 단위로 투입하고 있지만 재정 투입 효과가 단기간에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정책 설계가 중요하다. 또 저출산 원인은 주거, 취업, 사교육비, 비혼·만혼 현상 등이 겹쳐 있어 다층적인 정책 수립이 필요하다. 실제 출산 정책이 성공적이라고 알려진 프랑스의 경우에도 정부의 재정 정책이 출산율을 높이는 데 효과적으로 작동했다는 연관성은 입증되지 않았다.
정부 지원받는다고 애 더 낳을까?
여러 연구 결과를 보면 정부 지원금과 자녀 수는 비례해 늘지 않는다. 아이를 낳아 정부 지원금을 받은 가정은 그 돈을 둘째, 셋째 아이를 낳는 데 쓰지 않고 출산이 아닌 다른 지출에 쓰는 경향을 보인다. 이밖에도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도 고려해야 할 부분 중 하나다. 모든 가정이 자녀 수에 따라 지원금을 받으면 상대적으로 빈곤한 가정은 출산을 늘리는 반면 부유한 가정의 자녀 수는 크게 변하지 않는다. 출산에 따른 세제 혜택 역시 부유한 가정이 더 많이 누리게 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이런 연구 결과를 다룬 ‘미시경제학의 관점에서 본 출산 정책’ 보고서에서 “프랑스를 포함해 여러 국가의 출산 정책이 출산 증가에 기여했다는 일관된 실증연구결과가 존재하지 않는다”며 “출산 정책에 따른 많은 부작용을 고려할 때 세금 징수를 통한 출산 정책을 확대 실행해야 한다는 주장은 성급하다”고 주장했다.
양당 후보의 저출산 공약은 모두 재정 지출을 기본으로 하는 현 정부 정책과 상당 부분 겹친다. 또 보육 서비스를 강화하겠다는 공약은 마땅히 해야 할 복지 정책이지,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정책으로는 보기 어렵다. 정책 효과에 대한 충분한 고민이 없이 공약을 찍어내는 데 급급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강동수 한국개발연구원(KDI) 거시금융정책연구부장은 앞서 인구정책 토론회에서 “보육정책은 당연한 사회 시스템이지 추가 출산 반등 유인이 되지 못하고 있다”며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인구정책의 목표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김두섭 한양대 사회학과 교수는 “저출산 정책에 쓰는 예산을 늘리면 출산율이 올라갈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지나치게 낙관적인 태도”라며 “그동안 쏟아부은 저출산 관련 재정이 효과가 있었는지 평가하는 작업도 없이, 수당을 더 주면 애를 낳을 것이라고 보는 생각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혼외 출산율이 낮아서 우선 혼인을 늘리는 것이 순서다. 결혼도 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애를 낳으면 돈을 준다고 하는 공약이 효과가 있겠느냐”며 “출산 정책이 효과가 있을 만한 집단을 세분화해서 찾아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현 상황에 대한 제대로 된 진단 없이 돈만 주는 방향으로의 정책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세종=심희정 기자 simcity@kmib.co.kr